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현문미디어)
생각의 사슬을 끊으라는 초대
학창 시절, 코팅된 책갈피나 공책, 일기장의 상단과 하단에는 의미심장한 문구가 적혀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가운데는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에서 온 “가장 높이 나는 갈매기가 가장 멀리 본다.”라는 문장도 있었다.
꿈은 원대하게 가지라고 하지만, 그 문장의 ‘가장’, ‘높이’, ‘멀리’라는 단어가 주는 추상성은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특히 ‘가장’이라는 단어는 내게 유난히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그것은 단순히 높이 나는 갈매기를 그리는 이미지가 아니라, 그 방면의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명령처럼 느껴졌다. ‘높이’와 ‘멀리’라는 단어의 깊이도 가늠하기 어려워 경이로움보다는 오히려 멀미가 먼저 찾아왔다. 어린 나이였음에도 의지가 부추겨지기보다는 압박감을 더 크게 느꼈다.
꿈이라고 해도, 그때의 나는 이미 조금은 비관적인 생각에 기울어 있었다. 부질없는 인생 속에서 ‘가장’이라는 말이 과연 그렇게 중요한 의미를 가질까, 스스로 회의했다. 정말 높이 나는 것이 중요한가. 멀리 본다는 건 무엇을 위한 것인가. 나는 오히려 가까운 것을, 손에 잡히는 것을, 지금 이 자리의 존재들을 더 알고 싶었다.
특히 그 문장을 떠올릴 때마다, 자유와 도전이 모두 빛나는 약속처럼 보이기보다는, 누군가가 나에게 들이미는 기준선 같았다. 그 기준을 넘어서지 못하면 실패한 삶을 살게 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오해였다. 높이 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며, 멀리 본다는 것이 반드시 경주처럼 경쟁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자기 안의 한계를 넘어 자신이 보고자 하는 풍경을 향해 나아가는 태도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갈매기는 자유의 무한한 관념이며 위대한 갈매기의 형상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만 한다. 날개 끝에서 날개 끝까지 그대들의 몸 전체가 단지 그대들의 생각 자체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조나단이 제자에게 한 말이고, 조나단이 떠난 뒤에는 플레처가 자신의 제자에게 다시 들려준 말이다. 깨달음은 이렇게 전승된다. 조나단은 제자들에게 이렇게도 말했다.
“몸은 생각 그 자체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다. 생각의 사슬을 끊고, 육체의 사슬을 끊어라.”
이 말은 독자에게 강렬한 울림을 주지만, 동시에 위험한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다. 현실에서 몸은 분명 실재한다. 인간은 피곤하면 쓰러지고, 병이 들면 고통받으며, 늙으면 힘이 빠진다. 그 한계를 무시한 채 ‘몸은 환상일 뿐’이라고 믿는다면, 오히려 자기 몸을 소모시키거나 타인의 고통을 가볍게 여기는 잘못을 범할 수 있다.
그러나 바크가 말하고자 한 뜻은 육체적 한계를 부정하라는 데 있지 않다. 그보다는 생각이 덧씌운 족쇄를 벗어나라는 가르침에 가깝다. 자기 부정적인 말, ‘나는 원래 못해’, ‘여기까지가 내 한계야’라는 단정이야말로 몸을 가두는 사슬이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부정적인 말 속에 스스로를 가두는 존재에 가까웠다. 아무리 해도 부질없어 보이고, 결국은 죽음 앞에서 무력해지리라는 생각에 자주 낙담하곤 했다. 조나단의 말은 곧 정신이 스스로 규정한 벽을 넘어설 때 새로운 자유가 열린다는 은유적 선언으로 다가온다.
『갈매기의 꿈』은 이렇게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다소 위험한 소지를 가진 작품이다. 이는 작품이 다분히 정신적인 차원을 강조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오랫동안 내게 쉽지 않은 책이었다. 그러나 몸의 실재를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그 몸을 억압하는 생각의 족쇄를 끊으라는 초대로 읽는다면, 조나단의 말은 우리 삶에 안전하면서도 깊은 깨달음으로 다가올 수 있다. 결국 『갈매기의 꿈』은 더 높이 나는 법을 가르치는 책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만든 사슬을 성찰하게 하는 책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