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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기웃거리다 55

엄마, 엄마, 엄마.

by 인상파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술주정하듯 대답 없는 사람을 향해

엄마를 불러본다.


주무시던 엄마

눈을 가늘게 뜨고

가을 들판의 허수아비처럼

힘없이 바라보다

다시 고개를 돌린다.


눈을 감고 있는 엄마를 지켜보며

엄마가 엄마인 걸 몰라도

내게는 엄마인 걸.

딸이 딸인 걸 몰라도

엄마에게는 딸인 걸.


캄캄한 세상으로

머나먼 길을 나서야 할 것만 같은

서럽고 쓸쓸한 안개가 피어나는 이때,

잠 속을 헤매는 엄마라도 붙잡고

엄마, 엄마, 엄마를 불러야

세상은 그나마 온기가 남아 있고

가쁜 내 숨도 제자리 돌아온다.


엄마라고 불렀을 때

내 안의 막힌 길이

아주 조금 열리는 것만 같았다.


엄마라고 불렀을 때

엄마가 세상의 엄마처럼

나를 그윽히 바라봐주지 않아도,

엄마의 세계에 빠져들어

딸이 딸인 걸 모르더라도,

축 늘어진 젖가슴에 파묻혀

엄마, 엄마, 엄마.


엄마라고 아직 부를 수 있으니

엄마인 내가 아이가 될 수 있고,

엄마는 엄마로 남아

세상의 울음을 건드릴 수 있다.


울적하고 답답한 밤, 어머니가 주무신다. 나는 갈 곳 없는 사람의 심정이 되어 벽과 다를 바 없는 어머니를 흔들며 엄마, 엄마를 불러댄다. 주무시던 어머니의 눈빛이 사납다. 그 눈빛을 아랑곳하지 않고 엄마, 엄마를 불러댄다. 어머니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만사가 귀찮다는 투로 쏟아낸 욕설이다.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고 엄마, 엄마를 지겹도록 불러댄다. 술 취하지 않아도 술 취한 사람처럼 내 정신은 반쯤 나갔다. 어머니의 가슴팍까지 파고들어 엄마, 엄마를 부른다. 그제야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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