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표 없는 고독
박태원의 <방란장 주인>(창비)
마침표 없는 고독
월북 작가 박태원의 이름을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알지 못했다. 그의 작품이 해금된 것은 1987~1988년 무렵이었으나, 그때에도 여전히 그의 이름과 작품은 낯설었다. 본격적으로 접하기 시작한 것은 창비에서 나온 20세기 한국소설 작품선을 통해서였다. 뒤늦게 마주한 그의 글은 단순히 월북 작가의 복원된 텍스트라기보다, 우리 문학사 속에서 실험과 모색을 멈추지 않았던 한 예술가의 목소리로 다가왔다.
학창 시절에는 들어보지 못했던 이 작품을 알게 된 것은 딸아이가 초등학교 다닐 무렵이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 한 문장으로 된 소설이 있다면서 흥분된 어조로 소식을 전하더니 인터넷에 실린 전문까지 찾아 보여주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이후 학생들과 독서 수업을 하면서 이 작품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서 작품이 친근하게 다가왔다.
글이 긴 호흡으로 이어져 있어 내용을 따라가기가 다소 어려웠는데, 특히 장사가 안 돼 빚만 늘어나고 주인이 가게를 비워 달라 성화를 부리는 상황을 방란장 주인이 방 천장을 쳐다보며 고심하는 대목에서 자주 놓치곤 했다. 그렇지만 이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문장에서 인물의 삶이 고단하게 흘러가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마침표 없는 글에서 젊은 예술가의 고독과 시대의 막막함이 고스란히 전해왔다.
나 또한 그 한 문장의 리듬을 좇아 글을 적어보았으니,
1936년 《시와 소설》 창간호에 발표된 이 작품은 단 한 문장의 소설로 유명하니, 방란장 주인의 모델이 작가의 절친이자 시인이며 소설가이며 화가인 이상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고, 이상의 작품 <날개>의 남자 주인공 역시 이상이라는 말이 있는데, <날개>에서는 몸 파는 여자의 기둥서방 노릇을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제 힘으로 다방을 열어 장사를 하니 가상하다 할 만하며, 다방을 여는 이의 직업은 유화 나부랭이를 그리는 무명의 화가로 돈 300원을 들여 가게를 차렸으나, 지금으로 치면 1천만에서 4천만 정도라고 하는데, 물건 들일 돈이 없어 자신과 다르지 않은 불우한 예술가들의 도움을 받아 수제형 축음기며 흑반 레코드며 재떨이며 화분 따위를 협찬받고, 특히 작가 수경 선생은 가게 이름을 ‘방란장’(아름다운 난초 가게라는 뜻)으로 지어줘서 무명 화가는 방란장 주인이 되었으니, 첫 서너 달은 손님이 많아 장사가 되는 듯했으나 곧 내리막길에 접어들었으매, 이유는 가까운 곳에 천칠백 원이나 들인 모나미 다방이 문을 연 까닭이요, 늘어난 빚 중에는 종업원 미사에에게 진 빚이 가장 큰 근심거리가 되었으니, 그녀는 원래 수경 선생 집의 하녀였으나 선생의 소개로 방란장에 들어와 가게 일뿐 아니라 독신인 주인의 살림까지 도맡았으니, 정한 월급 10원은 2년 동안 밀려 200원이 넘고, 주인이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라 하면 우직한 시골 색시는 자신이 무슨 대단한 잘못을 한 줄이나 알고 울었으며, 수경 선생 말대로 그녀와 결혼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되, 당장 돈이 없어 쫓겨날 판국에 그런 생각을 할 처지가 못됨을 깨닫고, 수경 선생은 형편이 나아 글쓰기에 매진할 수 있는 환경에서 살고 있는데, 일주일 넘게 만나지 못해 선생을 찾아가 신세한탄이라도 하려 했으나, 선생의 집 밖에까지 들려오는 선생 아내의 욕설과 살림을 때려 부수는 광경을 보고, 방란장 주인은 달음질하듯 그곳을 벗어나 황혼의 가을 벌판 위에서 자기 혼자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고독을 온몸으로 받으며, 개업한 카페를 어찌어찌 2년은 끌고 왔으되 남은 것은 빚뿐이고, 위로가 될 만한 수경 선생도 아내의 히스테리에 꼼짝 못하는 신세라는 것을 확인하고, 방란장 주인은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고독에 짓눌려 홀로 방황하는 바,
1930년대 가난한 젊은 예술가의 고독이 절절히 와 닿는 글이 아닐 수 없으니, <방란장 주인>은 단 한 문장이라는 파격적 형식 안에 예술가의 생존 현실과 고독을 밀도 높게 담아낸 작품으로, 당대 모더니즘 문학의 실험 정신을 웅변하는 동시에, 해방과 분단, 그리고 해금 이후에야 비로소 다시 읽히게 된 한국 근대문학사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귀중한 텍스트가 아닐 수 없는데, 독자가 마주하는 것은 궁핍한 예술가의 마침표 없는 고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