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우리 곁에 있는 복덕방
이태준의 「복덕방」(창비)
아직도 우리 곁에 있는 복덕방
내게 ‘복덕방’이라는 이미지를 가장 강하게 남긴 작품이 있다면, 그것은 이태준의 「복덕방」일 것이다. 복덕방이라 하면 어쩐지 후줄근한 옷차림의 노인들이 담배 연기로 자욱한 방 안에서 장기나 바둑, 화투를 두는 풍경이 떠오른다. 그들에게 복은 멀고, 덕은 사치스러운 말이다. 「복덕방」의 서참위와 안초시, 박희완 영감 같은 노인들이 바로 그 모습이다.
세월의 끝자락에 매달린 이들은 여전히 체면과 허영을 놓지 못한 채, 허무를 안고 살아간다. 복덕방의 주인 서참위는 구한말 참위라는 벼슬을 지냈지만 나라가 망하고 갈 데 없는 신세가 돼 심심파적으로 가옥중개업을 하며 지낸다. 그는 “세상은 먹고 살게는 마련이야”라고 말하고 다닐 정도로 세상살이의 결을 아는 인물이다. 박희완이라는 영감은 가끔 들러 재판소에 다니는 조카가 있어 대서업 운동을 한다고 <속수국어독본>을 끼고 다니지만, 아직 대서업 허가는 받지 못했다. 안초시는 셋 중에서 형편이 가장 어렵다. 예순을 바라보는 그는 복덕방을 제집처럼 드나들며 무료한 시간을 달래고, 가끔은 그곳에서 잠을 자기도 한다. 복덕방은 그들의 일터이면서 집이기도 하지만 살아 있음의 흔적을 겨우 이어주는, 세상과의 마지막 연결고리에 가깝다.
안초시는 한때 돈깨나 주무르던 인물이었지만 재물 운은 그를 따라주지 않았다. 드팀전을 하다가 실패하고 집을 잡혀 장전을 내었다가도 화재를 당했다. 추석을 앞두고 어디선가 부치는 녹두빈대떡 냄새에 입맛을 다셔보지만, 정작 자신은 때 묻은 낡은 적삼을 걸치고 있을 뿐이라 고적함과 슬픔이 밀려든다. 세상이 너무 빨리 달려가 버렸고, 그는 그 끝자락을 붙잡지도 못한 채 밀려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박희완 영감이 귀가 솔깃할 만한 소식을 전한다. 한 공무원이 흘린 개발 정보를 들었다며, 관청에서만 아는 제2의 나진이 될 지역이 있다는 것이다. 지금 땅값은 헐값이지만 곧 몇 배로 뛸 거라는 이야기였다. 안초시는 그 말을 듣고 오래 눌러왔던 욕망이 다시 고개를 드는 걸 느낀다. 그는 세상사에 대해 “돈이 내 손에서 떨어지면 그 즉시 인연도 끊어진다”고 여기는 사람이었고, “돈냥이나 엎질러본 녀석이 벌기도 한다”는 믿음도 있었다. 박희완 영감이 던져준 정보는 그에게 다시 한 번 돈과 인연을 맺을 기회처럼 보였다.
돈 벌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마다할 사람은 없다. 안초시는 무심히 흘리듯 그 이야기를 딸에게 전하고, 구미가 당겼던 딸은 돈을 빌려 투자에 나선다. 그러나 1년이 지나도 안초시 딸이 산 땅은 오를 기미가 없다. 정보를 잘못 알고 샀던 관청 직원이 자신이 산 땅을 처분하려고 꾸며낸 말이었고, 그 땅을 안초시 딸에게 떠넘긴 것이었다. 그 일로 안초시는 딸 앞에서 얼굴도 들지 못한 죄인이 되었다. 그는 “재물이란 친자간의 의리도 배추 밑 도리듯 하는 건가?” 하며 탄식할 뿐이었다.
그 일로 울고 지내는 안초시를 안타깝게 여긴 서참위는 그를 위로하려고 술집으로 데리고 다니며 기분을 풀어주려 애쓴다. 다음 날, 복덕방에서 자고 있을 그에게 해장술이라도 사주려고 들렀을 때 안초시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그는 음독으로 생을 마감했다. 서참위는 안초시의 딸에게 부친의 변고를 알린다. 하지만 딸은 제 체면을 생각해 “제발 관청에는 알리지 말아 달라”고 사정한다. 그래서 서참위는 그녀에게 안초시 앞으로 나오는 보험금으로 값비싼 수의와 널찍한 장지를 사서 잘 모실 것을 권한다. 그렇게 안초시의 인생은 쓸쓸히 막을 내린다.
이태준의 「복덕방」은 1930년대의 눅눅한 공기 속에서 인간의 탐욕과 무력감을 교차시킨다. 복덕방이라는 이름에는 복(福)도, 덕(德)도 없다. 그곳은 몰락한 노년들이 체면을 붙잡고 허무를 달래는 마지막 은신처와 같았다.
그러나 그 방 안의 대화들은 오늘의 세상과 다르지 않다. 떼돈을 벌 수 있는 정보를 흘리고, 그 정보에 기대 일확천금을 꿈꾸는 인간의 욕망은 1930년대나 2025년에나 별반 다르지 않다. 안초시의 죽음은 돈의 논리 앞에서 한 인간의 자존이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가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이태준은 인간의 탐욕을 꾸짖지 않는다. 그저 담담히, 그러나 냉정하게 보여줄 뿐이다. 복덕방은 단지 과거의 공간이 아니다. 돈과 체면, 탐욕과 허무가 반복되는 인간사의 풍경 속에서 그 방은 지금도 어딘가에 있다. 낡은 간판 아래, 여전히 누군가는 장기판을 펴고, 누군가는 실패한 투자 이야기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 곁을 스쳐 지나가며 우리는 안초시의 그림자를 본다.
그 허무는 가난의 허무가 아니라,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의미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허무다. 복덕방은 한때 ‘일하던’ 사람들이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모여드는 공간이다. 그들은 세상에 참여하지도, 완전히 떠나지도 못한 채 그저 ‘존재의 여분’처럼 남아 있다. 장기를 두고, 담배를 피우며,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하지만 그 이야기 속엔 미래가 없다.
복덕방의 인물들은 특별히 악하지도, 선하지도 않다. 그저 ‘하루를 견디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삶은 욕망이 아니라 관성이고, 말 그대로 ‘습관적으로 살아 있는 상태’다. 그런 상황에서 돈이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세상에서, 그 잣대를 따라가지 못한 안초시의 죽음은 세상에 등을 돌린 것이 아니라 세상이 먼저 등을 돌린 사람의 쓸쓸한 뒷모습이다.
「복덕방」은 오래된 이야기 같지만, 오늘의 우리를 비추는 낡은 거울 같다. 그 방이 언제나 개방되어 있다는 사실이 또한 슬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