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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상파 Jan 09. 2024

간병일기 04

다시 발작

두 아이와 외출 갔다 돌아와 보니 남편이 부엌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딸아이가 먼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바람에 거품을 물고 쓰러진 아빠를 보고 말았다. 아이는 사색이 돼 몸을 떨며 울기 시작했다. 우는 아이를 진정시킬 겨를이 없었다. 남편의 상태가 위중해 보였다. 떨리고 겁나고 머릿속은 백지장처럼 하얘질 뿐이었지만 그 와중에도 떠오르는 것은 역시 119뿐이었다. 전화를 걸었는데 집주소가 생각나지 않았다. 한참을 더듬거리다가 생각해냈다. 병원에 가져갈 옷을 챙기고 아이들을 맡기려고 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그제 남편과 함께 서울대 병원에 갔었다. 오전에는 MRI가 잡혀 있었고 오후에는 신경외과 진료가 있었다. 평소 새벽녁에나 자는 사람을 잠들 시간에 깨워 일정을 소화해 냈더니 남편이 많이 힘들어했다. MRI를 찍은 후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오후에 진료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남편의 안색이 몹시 창백했다. 일찍 일어나느라 피곤해서 그런 모양이라고 넘기고 말았는데 그것이 이런 대형사고가 일어날 조짐은 아니었을까. 더욱이 진료 의사는 남편의 예후가 좋지 않다는 말을 꺼냈다. 불안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더 캐묻자 의사는 더 자세한 내막은 MRI 검사 결과를 보고 알 수 있다며 그때 가서 얘기하자며 말을 끊었다. 확실해진 바가 없었으니 불안한 마음에도 아직은 괜찮다고 지레짐작하고 만 게 탈이었다. 

구급차는 빠르게 도착했다. 대원들이 남편의 상태를 체크하더니 뇌종양 환자에게 종종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더 지켜봤다가 또 발작을 하면 그때 병원으로 옮기자고 하면서 돌아갔다. 몸의 외상은 보이지 않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가슴을 쓸어내렸다. 외출을 하는 게 아니었다. 혼자 있는 남편이 걱정돼 바깥에서 시간마다 전화를 걸어 확인을 했다. 일이 터져도 거리가 멀다면 전혀 도움을 줄 수 없는 상황인 걸 잘 알면서 내 속 편하자고 하는 짓이었다. 아까도 전화를 했을 때는 사람 목소리가 너무 발랄했다. 점심 지나서 일어났는데 라면이 먹고 싶어 라면을 끓이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이렇게 일이 터질 줄이야. 

남편이 쓰러진 지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지만 나와 아이들이 귀가하고 구급차가 오고 하는 사이에 남편의 의식은 돌아왔다. 좁은 부엌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람에게 안방으로 가서 눕자며 일으켜 세웠더니 그냥 그대로 누워있고 싶다며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자기가 누워있는 장소가 부엌인 것을 알고는 자기가 왜 그곳에 누워있는 거냐는 얼굴 표정이었다.

남편의 머리는 지금 어떤 반란을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 자기가 쓰러진 것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그만큼 발작의 강도가 셌다는 뜻이다. 근육통도 심해서 가볍게 훑고 지나가는 때와 달리 몸을 일으켜 세울 때마다 신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이 통증은 오래 갈 것이고 누워있는 시간은 길어질 것이다. 기억력과 인지력 감퇴도 심해져 생활에 어려움을 겪을 터다. 

남편은 안방에 누워있고, 아이들은 자기네들 방으로 들어가고, 나는 식탁에 앉아서 이 심란하기 그지없는 분위기에 압도돼 어떻게라도 이 분위기를 떨쳐보고자 볼펜을 잡고 노트에 끄적인다. 이 일만이 유일하게 나를 지탱하는 버팀목이라도 되는 것 마냥. 이렇게 백지에 고랑을 내지 않으면 인생이 여기에서 멈출 것만 같아서 하염없이 호미질을 한다.( 2010년 10월 31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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