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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상파 Jan 08. 2024

간병일기 03

아빠 걱정

남편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잠에 빠져들었다. 저녁 7시까지. 새벽 1시에 잤다고 했었는데 잠자리에서 일어난 사람에게 다시 물어보니 모르겠단다. 남편의 머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그 명석한 사람이 며칠 사이에 바보가 돼 버렸다. 자기가 사는 집 주소를 기억하지 못한다. 일시적인 현상일까. 7년 가까이 밤마다 먹는 항경련제 먹는 것도 모른다. 내가 챙기는 일없이 알아서 잠들기 전에 먹었던 약이다. 그런데 밤에 약을 먹으라고 했더니 무슨 약을 먹으라고 하느냐고 뜬금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밤마다 잠자기 전에 복용하던 약을 최근에 먹지 않고 있었다는 것인가! 

약의 복용 여부를 확인할 길이 없으니 갑자기 불안이 엄습해 온다. 발작이 언제 시작될지 알 수 없으니 늘 예의주시하고 있어야 한다. 발작이 일어나면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조용하게 지나가길 바랄 뿐이다. 구급차를 부를 정도로 심각하게 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내가 없는 상황에서 발작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바닥으로 머리부터 넘어지지 않기를, 모서리에 넘어져 타박상을 입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

고작 일주일 전에도 글을 쓰던 사람이었다. 물론 그때도 어렵고 힘들게 썼다. 어제도 남편은 써야할 원고 앞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뭔가를 쓰기는 썼다. 그걸 기억하지 못할 뿐이다. 이런 상태에서 글을 쓰기는 불가능하다. 자신의 몸 상태를 알지 못한 남편은 계속 글을 쓰고 있고 써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미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에는 선을 넘어버렸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급작스럽게 사람이 달라지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진행이 빨라도 지나치게 빠른 것 아닌가.

머릿속이 까매지고 목이 바짝 타들어간다. 심장이 벌렁거린다. 시간이 지나니 마음이 눅눅하게 젖어버린다. 금방이라도 남편이 어떻게 돼버릴 것 같아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젖은 눈으로 멍하게 앉아있으니 딸아이가 엄마를 유심히 지켜보다가 왜 그러냐고 묻는다. 목소리가 울음에 가깝다. 그냥 기운이 없어서 그런다고 해도 자꾸 캐묻다가 저도 달라진 집안 분위기를 알고 있었는지 기어코 제 마음속에 담아둔 불안한 말을 던진다. 

“엄마, 우리 아빠랑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 수 있죠?”

그렇다고 대답은 했지만 자신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남편이 우리 가족 옆에 오래 남아줄까? 아이의 소원과 달리 남편이 생각 외로 빨리 가버릴지 모른다는 예감이 성난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이미 여러 징후가 우리 가족에게 나쁜 일이 닥치리라는 것을 말하고 있지 않은가.  

아이는 아빠가 이미 어떻게 된 것처럼 내 품에 달려들어 흐느낀다. 안방에서 자고 있는 남편이 신경쓰여 그러지 말라고 달래도 소용이 없었다. 이미 봇물처럼 터져버린 아이의 울음소리는 집안을 가득채웠다. 아이의 울음소리에 남편이 깼는지 딸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를 진정시키려고 나는 아이 손을 잡고 안방으로 갔다. 아이는 아빠를 보자마자 훌쩍이며 

"아빠, 빨리 나으세요."

 라며 제 아빠를 꼭 껴안는다. 남편은 

"딸, 아빠 안 아프고 이렇게 건강해."

하며 제 품으로 달려드는 아이를 두 팔을 벌려 끌어안는다. 

유치원생 아들 녀석은 거실 소파에서 열린 문으로 아빠와 누나 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들으면서 아무 것도 모른 척 책만 들여다본다.(2010년 10월 14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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