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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상파 Jan 10. 2024

간병일기 05

괜찮다는 말

아픈 것도 아니면서 왜 자꾸 눈물이 나는 거냐. 정작 아픈 사람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저토록 태연하건만. 현실에 살지 않고 끔찍한 상상 속을 헤매고 있다. 애상적인 분위기에 젖어서 사람이 한없이 가라앉는다. 남편이 쓰러진 장면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기억이 몸집을 부풀리며 마치 지금도 진행 중인 일처럼 사람을 어둠속으로 밀쳐버린다. 

상상은 지금보다 더 먼 미래의 일, 남편의 죽음과 장례식이 있는 곳으로 나를 끌고간다. 그것들은 현실보다 더 생생하게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가상의 현실이 손을 뻗으면 닿을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다. 인간의 뇌가 이토록 침울한 풍경을 만들어낼 때 인간이 생각하는 동물이라는 사실이 고통스럽다.

남편은 제 몸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사태를 판단할 능력을 잃은 것 같다. 기억하지 못하니 그럴 수밖에. 아니, 수심이 담긴 아내의 얼굴을 보고 걱정스럽게 자기는 괜찮다고 하는 것을 보면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에게 이 ‘괜찮다’는 말은 어떤 의미란 말인가. 병세가 악화된 지금의 처지를 수용한다는 말인가. 아무리 발작이 잦아지고 있는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직감이라는 것이 있으니 전혀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어찌 해 볼 도리가 없다는 걸 알고 그저 수긍하는 것일지도. 

남편은 <황해문화> 원고 마감 날짜를 계속 미루고 있다. 컴퓨터를 켜기 전에 원고를 쓸 것처럼 말해 놓고서는 정작 컴퓨터를 켜서는 뉴스를 검색하고 노래를 찾아 듣느라 글 쓰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린다. 시간 감각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기억체계가 엉키고 있다. 나는 조만간 잡지사나 출판사에 남편이 원고를 더 이상 쓸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야 할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이런 남편을 담담하게 지켜보는 것만이 최선일지 모른다. 감정을 드러내지 말자. 아직 우리는 건재하다고 믿자. 그래야 이 시련을 견딜 수 있다.(2010년 11월 3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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