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몰라서가 아니라, 사랑받지 못해서 무너져내린
현진건의 〈B사감과 러브레터〉(문학과지성사)
사랑을 몰라서가 아니라, 사랑받지 못해서 무너져버린
사랑을 몹시나 갈망하나 사랑받지 못한 여자 이야기를 다룬 현진건의 단편 〈B사감과 러브레터〉은 오랫동안 마음 한 구석을 서늘하게 하는 작품이다. 현진건은 인간의 비극을 도덕으로 재단하지 않고, 그 비극 속에서 벌거벗은 마음의 진실을 들춰낸다. 이 작품에는 한 여자의 광기보다 더 슬픈, 사랑받지 못한 존재의 고독이 숨어 있다. 사랑을 몰라서가 아니라, 사랑받지 못해서 무너져내린 한 인간. 그녀의 분노는 악의가 아니라 결핍의 반사였고, 그 결핍은 사회의 시선이 만들어낸 깊은 흉터였다. 밤마다 남녀의 연애편지를 흉내 내던 그 방 안에서, 우리는 부끄럽고 애처로운 인간의 욕망을 본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품고 있는 결핍의 또 다른 그림자일지도 모른다.
<운수 좋은 날>에서 도시 하층민 김첨지를 더할 수 없는 극빈층으로 리얼하게 그려내던 작가는, 이 작품에서는 지독히 못 생긴 얼굴로 남성을 원수로 여기면서도 남성의 사랑을 갈망하는 이중적인 태도의 B사감을 내세운다. B사감이 이토록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사랑받을 만큼의, 사랑할 만큼의 외모를 지니지 못한 비극에서 비롯된다.
“C 여학교에서 교원 겸 기숙사 사감 노릇을 하는 B여사라면 딱장대요 독신주의자요, 찰진 야소꾼으로 유명하다. 사십에 가까운 노처녀인 그는 주근깨투성이 얼굴이, 처녀다운 맛이란 약에 쓰려도 찾을 수 없을 뿐인가, 시들고 거칠고 마르고 누렇게 뜬 품이 곰팡 슨 굴비를 생각나게 한다.”
연애는 첫눈에 반해서 시작되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피력된 B사감의 인물은 아무리 뜯어봐도 그럴 가능성이 전무하다. 첫눈에 반하지 않아도 자주 보다 보면 생기는 정이라는 것이 있다. 그런데 B사감은 ‘딱장대’ ‘독신주의자’ ‘찰진 야소꾼’으로 유명한 사람으로, 그녀 자신은 물론이고 타인의 감정도 비집고 들어갈 구석이 없다. 자의든 타의든 세상과 담을 쌓고 있으니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인물임에 틀림없다. 이렇듯 비호감의 외모에 성격까지 뒤틀린 것은, 그녀의 외모와 성격이 쌍으로 상부상조했음은 물론일 것이다. 더욱이 그녀의 못생긴 외모는 얼굴에 그치지 않는다.
“여러 겹 주름이 잡힌 훨렁 벗어진 이마라든지 숱이 적어서 법대로 쪽 찌거나 틀어올리지를 못하고 엉성하게 그냥 빗겨 넘긴 머리, 꼬리가 뒤통수에 염소 똥만 하게 붙은 것이라든지, 벌써 늙어가는 자취를 감출 길이 없었다. 뾰족한 입을 앙다물고 돋보기 너머로 쌀쌀한 눈이 노릴 때엔 기숙생들이 오싹하고 몸서리를 치리만큼 그는 엄격하고 매서웠다.”
이런 외모와 성격만으로도 학생들의 조롱과 놀림을 받기 충분했는데, 더욱이 그녀는 학생들의 미움을 살 만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일단 연애편지에 대해서는 극도의 반감과 역정을 내며 경멸감을 드러낸다. 학교로 오는 서신을 일일이 검열하며, 그들의 행동을 낱낱이 체크한다. 사내의 눈과 표정은 물론이요, 무슨 말을 했느냐 하며 ‘미주알고주알 캐고 파며 얼르고 볶아서 넉넉히 십년감수’는 시키는 것이다.
“달짝지근한 사연을 보는 족족 더할 수 없이 흥분되어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편지 든 손이 발발 떨리도록 성을 낸다.”
남학생 쪽이 일방적인 연애편지를 보내온 터라 여학생은 연애편지를 쓴 주인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도 두 시간 넘게 온갖 문초를 당해야 하니 억울할 수밖에 없다. 그 말미에 들려오는 말이 더 가관이다. ‘사내란 믿지 못할 것, 우리 여성을 잡아먹으려는 마귀인 것, 연애가 자유이니 신성이니 하는 것도 모두 악마의 지어낸 소리’라는 것이다.
세상의 남성을 적으로 돌리는 이런 모습은 요즘 한쪽에서 세를 얻어가는 급진적 페미니스트의 단면을 보는 듯해 씁쓸하다. 그런데 가을 들어 B사감이 감독하는 기숙사에 밤마다 사랑에 겨운 남녀가 수작하는 것 같은 괴상한 일이 벌어진다. 마치 여학생을 좋아하는 남학생이 기숙사 담을 넘어 여학생과 사랑을 속삭이다 이별하기 싫어하는 모습 같기도 한 그 소리는, 다들 잠이 든 밤중에 일어난 일이라 잠결에 그 진위를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한 학생이 소변을 보러 가려다가 자는 두 사람을 깨워 그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나서게 된다. 그 소리는 다름 아닌 B사감의 방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그 야심한 밤에 혼자 앉아 기숙생에게 오는 편지를 뜯어보며, 남녀의 목소리를 번갈아 가며 원맨쇼를 하고 있었다.
“누구를 끌어당길 듯이 두 팔을 벌리고 안경 벗은 근시안으로 잔뜩 한곳을 노리며 그 굴비쪽 같은 얼굴에 말할 수 없이 애원하는 표정을 짓고는 ‘키스’를 기다리는 것 같이 입을 쫑긋이 내어민 채 사내의 목청을 내어가면서 아까 말을 중얼거린다.”
그토록 사내라면 못 잡아먹어 안달을 하던 B여사. 그녀가 벌이는 모습을 지켜본 학생 중 둘은 망측하다며 기겁을 하고, 둘보다 나이가 있으면서 짓궂은 학생은 그녀를 동정하며 눈물을 흘린다. 낮에는 그토록 엄하고 가혹하게 굴었지만, 밤에는 남성의 사랑을 갈망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던 것일까. 보는 독자로서도 가슴 한쪽이 찌릿하다. 사랑에 척진 것처럼 굴어도 그 내면에는 강하게 갈망하는 이중성, 우리 안에 내재한 모습이기도 하다.
작품의 서두부터 주인공 B사감의 추한 외모 묘사는 단연 압권인데, 이는 세 여학생의 발가락 묘사와 좋은 대조를 이룬다.
“쌀벌레 같은 그들의 발가락은 가장 조심성 많게 소리 나는 곳을 향해서 곰실곰실 기어간다.”
세 여학생이 남녀가 수작하는 소리가 어디에서 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복도를 기어가는 장면이다. B사감은 얼굴‘마저’ 곰팡 슨 굴비로 묘사된 데 비해, 여학생은 발가락‘조차’ 쌀벌레같이 희고 투명하게 표현된다. B사감이 여학생들에게 느꼈을 열등감과 질투를 감히 짐작하고도 남은 대목이다. 그러니 남의 연애편지를 갖고 한밤중에 남녀가 수작하는 표정을 몸소 연기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이 작품은 사랑받지 못한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뒤틀린 방식으로 드러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B사감이 남성의 사랑을 ‘악마의 속임수’라 비난하면서도, 밤에는 남녀의 대화를 흉내 내며 입술을 내미는 장면은 인간 내면의 모순을 비춘다. 그 모순은 부끄럽고 우스꽝스러워 보이지만, 동시에 처절하고 슬프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진 근원적 욕망이지만, 그것이 좌절될 때 욕망은 증오로 바뀌고, 증오는 다시 사랑을 흉내 내며 스스로를 소모시킨다.
현진건은 그런 인간의 비극을 도덕이나 교훈으로 묶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적 시선과 규율이 한 여자의 욕망을 어떻게 비틀어놓는지를 보여준다. 그 시대의 ‘노처녀’라는 말 속에는 이미 여성의 존재를 수치화하고 배제하는 폭력이 숨어 있었고, 그 폭력은 결국 B사감의 내면을 병들게 했을 것이다. 그녀의 광기는 사회가 만든 외로움의 또 다른 얼굴이지 않을까.
밤마다 연애편지를 뜯어보며 혼자서 사랑의 대화를 흉내 내던 그녀의 방은, 실은 세상과 단절된 한 인간의 마음속을 비추는 작은 무대였다. 그 문틈 사이로 흘러나온 그녀의 중얼거림은 지금도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듯하다. 사랑을 몰라서가 아니라, 사랑받지 못해서 한없이 밑으로 가라앉은 목소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