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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록 43

고향을 잃은 자의 비애

by 인상파

현진건의 「고향」(창비)

고향을 잃은 자의 비애


현진건의 「고향」은 고향을 잃은 자의 비애를 다루고 있다. 그는 서울행 기차 안에서 중국, 일본, 조선 옷을 기묘하게 입은 남자로 고향에 들른 후 서울로 돈벌이를 나섰다. 초행길이어서 그런지 서울에 대한 어떤 정보라도 얻어듣고 싶은 마음에 제 주위에 앉은 일본인, 중국인에게 친밀감을 드러내며 일본말, 중국말을 지껄여 보지만 그들이 그를 탐탁하게 여길 리 만무하다. 그것을 보고 있던 ‘나’도 그의 행색이며 행동거지가 어쭙잖고 밉살스러워 외면해 버린다. 그러다가 얼굴에서 느껴지는 신산스러운 표정에 반감이 누그러져 그의 신세타령까지 듣게 된다.

그의 고향은 대구에서 멀지 않은 K군 H란 외딴 동리로, 한 백호 남짓의 주민이 역둔토를 지으며 넉넉하지는 못할망정 남부럽지 않게 평화롭게 사는 농촌이었다. 그러다가 시대가 바뀌어 땅의 전부가 동양척식회사의 소유로 들어감에 따라 새로 생긴 중간 소작인과 동척에 이중으로 뜯기면서 가을걷이해도 남는 것이 없자 마을 사람들은 너도나도 못 살겠다고 남부여대하고 타처로 떠나버린다.


9년 전, 그 역시 17세 되던 해에 가족들과 살기 좋다는 서간도로 이사를 갔다. 하지만 좋은 땅은 먼저 온 이들이 차지한 상태였고 황무지를 개간하기는 무리여서 남의 밑천을 얻어 농사를 지었다. 추수하고 돌아서니 고향과 다를 바 없이 얻는 것은 빈주먹뿐이었다. 더욱이 2년이 지나자 아버지가 병을 얻어 돌아가시고 그로부터 4년이 못 돼 어머니마저 영양실조로 돌아가시자 부모가 돌아가신 땅에 머물고 싶지 않아 신의주로 안동현으로 떠돌다가 일본까지 흘러가 탄광에서 일을 하지만 모은 돈을 모조리 방탕하게 써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다. 타국에 있다 보니 고국산천이 그리워 고향을 들렀는데 그 고향은 통째로 사라지고 없었다.

“썩어 넘어진 서까래, 뚤뚤 구르는 주추는! 꼭 무덤을 파서 해골을 헐어젖혀 놓은 것 같더마. 세상에 이런 일도 있는기오? 백여 호 살던 동리가 십 년이 못 되어 통 없어지는 수도 있는기오, 후!”


이렇게 통째로 사라진 고향을 둘러보고 그는 읍내에서 고향 사람을 하나 만난다. 그와 혼인 말이 오갔던 각별한 사이의 여자였다. 하지만 그보다 2살 연상이던 그녀는 열일곱 살 되던 해에 그 아비 되는 사람에 의해 유곽으로 20원에 팔아넘겨져 인연이 끊겼다. 그녀는 그 이십 원 몸값을 십 년을 두고 갚았지만 그래도 갚지 못하고 오히려 육십 원의 빚까지 지게 되었다. 그녀가 몹쓸 병에 걸려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그제사 주인은 빚을 탕감해주고 놓아줬다. 고향이 그리웠던 건 그녀도 마찬가지. 막상 찾아간 고향은 이미 그리던 고향이 아니었다.

“집도 없고 부모도 없고 쓸쓸한 돌무더기만 눈물을 자아낼 뿐이었다.”


십년의 세월이 흐른 뒤 두 사람의 기막힌 조우. 서로를 알아보지만 그들의 모습은 예전의 것이 아니다. 10년의 세월이 훑고 지나간 그녀의 얼굴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은 피폐한 고향의 이미지와 다를 바 없었다.


“암만 사람이 변하기로 어째 그렇게도 변하는기오? 그 숱 많던 머리가 훌렁 다 벗어졌더마. 눈은 푹 들어가고 그 이들이들하던 얼굴빛도 마치 유산을 끼얹은 듯하더마.”

그렇게 말한 그 남자의 외모는 조금 나았던 것일까. 십 년 동안 유곽에서 일하다가 병을 얻은 그 여자의 외모나 고향 떠나 10년을 떠돌았던 그 남자의 외모는 지나치게 흡사했다.

“그의 얼굴을 웃기보다 찡그리기에 가장 적당한 얼굴임을 발견하였다. 군데군데 찢어진 겅성드뭇한 눈썹이 올올이 일어서며 아래로 축 처지는 서슬에 양미간에는 여러 가닥 주름이 잡히고 광대뼈 위로 뺨살이 실룩실룩 보이자 두 볼은 쪽 빨아든다. 입은 소태나 먹은 것처럼 왼편으로 삐뚤어지게 찢어 올라가고 조이던 눈엔 눈물이 괸 듯, 삼십 세밖에 안 되어 보이는 그 얼굴이 십년 가량은 늙어진 듯하였다.”


남자의 나이는 실제로 26세였다. 얼마나 험난하고 고된 인생을 살았으면 젊은 나이의 얼굴에서 노인의 얼굴이 드러난 것일까. 둘은 다시 만난 기쁨의 눈물도 흘리지 못하고(눈물조차 나오지 않아서) 일본 우동집에 들어가 정종만 열 병을 마시고 헤어졌다.


남자의 참혹한 사람살이를 들으면서 화자인 ‘나’는 그와 정종 한 됫병을 마지막 모금까지 털어넣는다. 그는 취흥에 겨워서인지 그 당시 유행했을 신민요를 읊조린다.


볏섬이나 나는 전토는 신작로가 되고요.

말마디나 하는 친구는 감옥소로 가고요.

담뱃대나 떠는 노인은 공동묘지 가고요.

인물이나 좋은 계집은 유곽으로 가고요.


농사가 잘 되는 땅을 신작로로 만들면 농사는 어디에다 지으란 말인가. 옳은 말하는 사람은 감옥으로 가고, 늙은이는 공동묘지에 묻히고, 젊고 예쁜 여자들은 유곽으로 가면 농촌에 누가 남아있단 말인가. 이 신민요는 그 남자의 고향처럼 1920년대에 많은 농촌 공동체가 붕괴되었음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그 당시 사람들이 고향을 등지고 그 남자나 그 여자와 그리 다르지 않을 인생을 살았음을 보여준다.

현진건의 「고향」은 고향을 떠나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그 고향이 더 이상 고향이 아닌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 존재의 뿌리가 어떻게 흔들리는가를 보여준다. 고향은 단지 지리적 장소가 아니라 마음의 안식처이자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증명해주는 근원이다. 그러나 그 근원이 사라졌을 때, 인간은 어디에 발붙이고 살아가야 하는가.

학창 시절 국어 교과서에서 처음 이 작품을 만났을 때, 고향을 잃은 이의 비애가 낯설 만큼 깊게 다가왔다. 타지에서 부모를 잃고 떠돌던 사내가 그리움에 이끌려 고향을 찾지만, 그곳은 더 이상 자신을 맞아주는 품이 아니다. 삶의 터전은 이미 식민 권력의 손에 넘어가 버렸고, 남은 것은 돌무더기뿐이다. 자신이 발붙였던 땅, 기억의 자리, 삶의 의미를 모두 잃은 채 그는 슬픔조차 드러내지 못하고 타지로 떠나간다. 이 작품은 한 사람의 고향 상실이 아니라, 한 시대가 고향을 잃어버린 풍경이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돌아가고 싶은 자리를 품고 산다. 그러나 돌아가려 할 때 그곳이 이미 사라져 버렸다면, 남는 것은 그리움도 눈물도 아닌, 텅 빈 자리를 맴도는 허망함이다. 굶주림과 방황에 길들여진 사내는 허망함을 느낄 감각마저 희미해진 것 같다. 그래서 화자 앞에서도 체념조의 민요 한 자락을 흘려보낸 게 아닐까. 「고향」의 비애는 한 개인의 절망이 아니라, 절망을 느낄 힘조차 앗아간 시대의 잔혹함에 있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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