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나침반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창비)
인생의 나침반
<메밀꽃 필 무렵>은 서정적 묘사도 그렇고 한 남자의 순정이 드러난 아름다운 작품이다. 그러나 학창 시절 처음 이 작품을 읽던 나는 그들의 만남을 천생연분이라기보다 폭력에 가까운 장면으로 받아들였다. 표현은 없었지만 여자의 반항하는 몸짓이 보였다. 남자에게는 잊지 못할 밤이고, 울고 있던 처녀도 선뜻 승낙한 것으로 묘사되어 있지만, 나에게 그것은 시집가라는 아버지의 말을 거역하고 숨어든 도피처에서 더 큰 재앙을 만난 것과 다름없는 일로 여겨졌다. 여자의 몸에 남는 변화와 그로 인한 인생의 굴레를 생각하면, 그 하룻밤은 어린 독자에게 결코 낭만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동이의 존재로 그 일이 사실로 드러나는 순간, 오해는 오히려 확신으로 굳어졌다.
지금 다시 읽으면서 그때의 나는 작품을 ‘사랑 이야기’로만 보지 않았다는 점에서 오히려 정직했다고 생각한다. 시대가 변하고 여성의 목소리가 복원되면서, 이제는 그 밤의 장면을 허생원이 받아들인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장돌뱅이로 떠돌며 그 여인을 찾아 헤매는 그의 집념과 순정, 회한과 그리움이 어느새 내 마음속에도 들어앉기 때문이다. 허생원이 평생 걸었던 길은 단순한 장돌뱅이의 길이 아니라 속죄와 그리움의 길, 곧 인생의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이었다.
허생원, 조선달, 동이. 세 사람은 봉평 장이 끝나자 대화장을 향해 밤중에 길을 떠난다. 그 길에 펼쳐진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핀 가을 달밤의 풍경은 신비롭고 낭만적이기 그지없다. 한 번쯤 걸어보고 싶은 길이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 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혀 하얬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라? 무정의 자연물에서 유정한 소리를, 그것도 ‘짐승’ 같다고 하니 마치 발정난 짐승이 떠오른다. 나의 과한 상상일까. 그러나 달은 이 작품에서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하나의 살아 있는 생명체다. 죽은 듯 고요한 밤공기 속에서도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그 숨소리는, 인간과 자연이 함께 숨 쉬는 원초적 리듬을 암시한다. 그것은 인간의 욕망이 깨어나는 소리이자, 외로움이 생명의 충동으로 바뀌는 순간의 떨림이었다. 달빛과 메밀꽃, 그리고 그 속의 인간을 통해 생의 본질을 드러낸 것이다.
어쩌면 허생원이 성서방네 딸과 물레방앗간에서 정을 나눈 그 밤에도,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들리고, 소금을 뿌린 듯한 메밀꽃이 지천이었을 것이다. 자연이 품어내는 오묘하고 신비로운 힘에 이끌려 젊은 남녀가 쓸쓸하고 서러운 인생 이야기를 나누다 몸을 포개었을 터이니, 그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 밤, 허생원은 너무 밝은 달빛에 제 몸을 드러내기가 부끄러워 물레방앗간으로 숨어들었다. 그곳에서 울고 있는 처녀를 발견했고, 그저 운명처럼 하룻밤의 인연을 맺었다. 달빛과 메밀꽃으로 하얗게 물든 밤, 두 사람의 정은 그 밤이 뿜어내는 향기처럼 순수하고도 오롯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인연은 곧 불행으로 이어졌다. 집안 형편이 어려운 성서방네는 이튿날 도주했고, 둘의 만남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다. 허생원은 여자의 행방을 백방으로 수소문했으나 끝내 찾지 못했고, 그 이후 반평생을 봉평 근처 장터를 떠돌며 보냈다. 조선달이 장돌뱅이 일을 그만두고 가게를 차릴 계획을 세우지만, 허생원은 여전히 그 여자의 그림자 속에 산다.
“옛 처녀나 만나면 같이나 살까…… 난 거꾸러질 때까지 이 길 걷고 저 달 볼 테야.”
하룻밤의 인연이 그의 반평생을 끌고 다니다니! 길지도 않은 인생을 잊지 못한 여자를 위해 소모하다니, 허생원의 어리석음에 혀가 절로 차졌다. 그러나 사랑과 결혼마저 돈으로 사고파는 이 시대에, 한 여인을 향한 그의 일편단심을 어찌 무모하다고만 단정할 수 있으랴. 아름답고 가슴 시리다. 가진 것 없는 남녀의 사랑이라고 그 깊이와 절절함이 없다고 할 수 없다. 하룻밤 정으로 맺어진 인연이 반평생의 나침반이 되어버린 삶이었다. 어쩌면 인간이 살아가는 가장 순정한 방식일 수 있겠다.
살다 보면 인연이 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함께 인생을 가꾸기도 하지만 잠깐 스쳤다고 여긴 인연이 다시 제 집을 찾아들 듯 돌아오기도 한다. 시간의 길고 짧음과 상관없이,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어느 시기의 충만한 경험만으로도 충분한 인생의 나침반 구실을 하기도 한다. 그리움과 열망, 그리고 사랑의 마음으로 말이다. 그것이 곧 “왜 살아야 하는가”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가리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의 인생은 그 마음들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조금씩 흔들리며 나아간다. 그리고 그 흔들림 속에서 비로소 자신만의 나침반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