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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록 50

지워지지 않은, 여물지 못한 냄새

by 인상파

신경숙의 『외딴 방』(문학동네)

지워지지 않은, 여물지 못한 냄새


오랫동안 신경숙의 단편 「외딴 방」은 내 기억 속의 외딴 방에 남겨진 작품이다. 그 한 평도 되지 않는 방의 공간이 그대로 관짝이 되어, 희재 언니의 시신이 부패해 가며 흘러내린 추깃물과 함께 내뿜었을 고약한 냄새에서 한동안 벗어나지 못했다. 소설 중에 이렇게 강렬한 냄새로 기억되는 작품이 또 있을까. 모르겠다. 과문과독(寡聞寡讀)해서.

작품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고 남자는 문을 부쉈다. 냄새 때문에, 기다림 때문에…… 아무도 그 방에 들어가지 못했다.”


희재 언니의 죽음은 단지 한 사람의 비극이 아니라, 가난과 노동, 그리고 망각의 세월에 갇혀버린 시대의 초상처럼 다가왔다. 그녀가 살던 방은 외딴 곳에 있었지만, 그 외로움은 결코 개인의 것이 아니었다. 거기엔 수많은 희재 언니들이 있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공장에 취업해 산업체 부설학교를 다니며 어렵게 집안 살림을 돕고, 밤에는 잠을 줄여가며 공부를 이어가던 1970~80년대의 젊은이들을 우리는 ‘산업역군’이라 부르며 그들의 노동을 값지게 미화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집안이 가난하고 공부에 뜻이 없는 아이들이 가는 길”이라는 냉소와 비아냥이 함께 있었다. 신경숙 역시 그런 시절을 통과했기에, 자신이 다녔던 산업체 부설학교를 한동안 떳떳하게 말하지 못한 부끄러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 부끄러움은 세월이 지나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 부채감으로 남았다.


단편 「외딴 방」이 신경숙을 문단의 주목을 받는 작가로 만들었을 때, 그녀는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던 동창 하계숙으로부터 왜 우리 이야기는 하지 않느냐는 전화를 받았다. 그 한마디가 작가에게 깊은 파문으로 남았고, 결국 그녀는 그 부끄러움과 부채감을 정면으로 마주하기 위해 단편에서 하지 못한 이야기를 장편 『외딴 방』으로 썼다.


하지만 장편은 현재와 과거가 자꾸 교차하고, 작가의 부채감과 죄책감이 독자에게까지 전가되는 느낌이 있다. 작가 자신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작중 화자는 과감하게 십대 후반의 기억 속으로 뛰어들지 못하고 그 주변을 맴돌며 머뭇거리고, 서성거리고, 조바심을 낸다. 그 망설임이 때로는 진솔함으로 읽히기도 하지만, 이야기의 흐름을 끊고 결말로 향하는 힘의 탄력을 잃게 만들어 지루함이 없지 않았다.

그에 비해 단편은 장편의 에피소드라고 할 수 있지만 사건이 응축되어 있고, 설명보다 이미지를, 죄책감보다 체험의 생생한 기억을 앞세운다. 짧은 분량 안에 담긴 절제된 문장은 산업 현장과 부설 고등학교보다 닭장과 다를 바 없었던 서른일곱 개의 방이 있는 수돗가와 옥상, 두 사람이 누우면 옴짝달싹하지 못한 자취방과 불 꺼진 허름한 시장 바닥을 훑으며 궁핍과 고달픔 속에서도 사람 사이의 온기를 전한다. 단편의 세계는 작가의 부끄러움이 아니라 그 시절의 숨결로 남아 있고, 절제와 밀도의 힘이 깊은 울림을 만든다.

작가가 자신의 과거와 정면으로 마주하지 못하듯, 독자 역시 단편이 세상에 주목을 받았던 그때의 독서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여전히 희재 언니는 따뜻한 인상으로 기억할 수 없다.화자가 그랬듯, 희미한 웃음으로 아니, 그조차 거리가 멀다. 문 닫힌 여름의 방 안에 고여 있던 공기, 코끝을 찌르는 비릿한 썩은 냄새. 그건 단순히 부패의 냄새가 아니라 삶을 버티다 무너진 자리에서 나는, 여물지 못한 냄새였다.


희재 언니의 죽음은 눈물로 애도하기엔 너무 생생했다. 누군가의 생이 그토록 초라하고 외롭게 끝났다는 사실이 지금까지도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다. 『외딴 방』의 냄새는 끝내 지워지지 않은 채 오래도록 후각을 자극한다. 소설을 덮고 한동안은 내 안의 또 다른 방에서 그 냄새가 피어오르는 듯하여 마음 한쪽이 서늘해졌다. 살아 있다는 감각보다, 죽어 부패하던 그 여름의 냄새가 먼저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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