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의 무게
돌봄의 무게
10월 말부터 작년에 다녔던 등급 대상자 어르신 댁으로 다시 요양보호사 일을 다니기 시작했다. 거의 1년쯤 되었다. 그 사이 어르신의 남편은 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다 쇼크로 세상을 떠나셨고, 대신 대학생 손녀가 들어와 함께 살고 있었다. 거실에는 커다란 침대가 하나 놓여 있었다. 낮에는 쇼파로, 밤에는 잠자리로 쓰이는 그곳은 전에는 할아버지의 차지였는데 이제는 할머니의 자리가 되었다.
손녀는 큰방을 침실로, 작은 방을 공부방으로 쓴다고 했다. 굴러운 돌이 박힌 돌 뺀다고 하더니, 두 방을 쓰는 손녀가 주인 같고 할머니가 객 같았다. 손녀는 요즘 젊은 사람이 흔히 그렇듯 제 방 치우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고, 쓰레기를 치우지 않고 쌓아놓고 사는 게 할머니의 불만이었다. 무엇보다 혼자 남은 할머니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에 섭섭함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손녀들 어릴 때 며느리가 집을 나가서 내가 다 키워놨는데 그 은공도 모르고. 키워놔도 다 소용없어.”
그 말을 내뱉는데, 분노나 원망보다 오래된 피로와 체념이 배어 있었다. 오랜 육아의 기억이 자랑도, 보람도 아닌 지워지지 않는 고된 노동의 흔적으로 남은 듯한 목소리였다. 사람은 사랑을 주면서도 그 사랑이 언젠가 돌아오리라 은근히 기대한다. 어르신의 말 속에는 바로 그 기대가 무너진 자리의 쓸쓸함이 묻어 있었다.
손녀를 키우던 시간은 분명 사랑의 시간이었지만, 세월이 지나 그 사랑이 응답받지 못하자 상처로 변했고, 그 상처는 체념의 옷을 입었다. “키워놔도 다 소용없어.” 그 말은 단순한 원망이 아니라, 더 이상 기대하지 않으려는 마음의 방패였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다. 체념의 밑바닥에는 언제나 사랑의 흔적이 남아 있다. 사람에게서 완전히 마음을 거둔다고 믿으면서도, 그 사람의 안부를 끝내 묻지 않고는 견디지 못한다. 그 흔적은 꺼뜨려지지 않은 불씨처럼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아마 그것이 인간이 끝내 사랑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할머니는 정작 돌봄을 받아야할 나이가 되어 돌아보니, 자기 몸 하나 제대로 가누기 힘들고 손아귀 힘은 약해지고 주름과 굳은살로만 남았다는 사실이 서러운 것일까. 사람들은 흔히 돌봄을 사랑이라는 말로 치장하지만, 노년이 되면 문득 깨닫게 되는 것일 게다. 돌봄은 반드시 사랑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누군가를 위해 애쓰는 동안에는 몰랐으나,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희생이 누구의 기억에도, 심지어 당사자의 자부심 속에도 완전한 형태로 남지 않는다는 것을. 그녀의 목소리에는 돌려받지 못한 사랑에 대한 억울함과, 그래도 한때 누군가의 삶을 붙들어 주었다는 옅은 긍지와, 그마저도 부질없다는 체념이 한꺼번에 얽혀 있었다.
세월은 사람을 둥글게 만든다고 말하지만, 실은 세월이 깎아내는 것은 모나고 뾰족한 인간의 심성이 아니라 기대의 모서리인지 모른다. 기대를 놓는 일, 사람에게서 마음을 거두는 일, 다시 바랄 수 없음을 인정하는 일. 그렇게 희끗한 머리칼 사이로 사랑의 메마른 자국만 남겨두고 사람은 늙어간다.
늙어갈수록 돈 없는 게 서러운 세상에서, 늘어나는 것은 병과 고독뿐이었다.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기초 수급비는 반으로 줄었다. 한 사람이 줄었지만, 생활비는 줄지 않았으니 할아버지 몫으로 들어오던 돈이 사라지자, 세상은 하루아침에 더 가파른 언덕이 되었다. 그러니 어르신의 말 속엔 불평과 원망이 늘었고, 사람에 대한 믿음보다는 서운함이 자리 잡았다.
늙는 것도 서러운데 병까지 얻어 쓸 돈이 없어 옹색해지는 것, 스스로 약자라고 생각하고 약자 취급을 안 해주면 대단한 권리라도 빼앗긴 것처럼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보고 역시 세월은 사람을 둥글게 만들지 않는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자신이 약자라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세상의 눈빛이 차갑게 느껴지는 것 아닐까. 스스로는 움츠러들고 비굴하게 된다. 누군가가 배려해 주길 바라고, 먼저 다가와 주길 바라는 마음이 커질수록, 세상은 더 멀어지고 외로움은 더 깊어진다. 돌봄이란 어쩌면 그런 마음의 거리를 좁히는 일인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닫힌 마음 문 앞에서 오래 머물며 그 문이 쉽게 열리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그래도 문 앞을 떠나지 않는 마음, 그것이 ‘돌봄’의 다른 이름 아닐까. 그 문 앞에 서 있는 동안, 나 또한 누군가의 마음을 두드리며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돌봄은 남을 위해 하는 일이지만, 끝내는 나 자신이 버티는 힘이 된다. 어쩌면 인간이 인간으로 남는 일은 서로의 문 앞을 오래 지켜주는 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