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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글 32

엄마를 깨우는 밤

by 인상파

엄마를 깨우는 밤


나는 울적해지면 주무시고 있는 엄마를 깨워 말을 시킨다.

엄마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깜짝이야!”

하고 나를 쳐다본다.

그 다음을 주시하는 엄마에게 나는 일부러 말장난을 건다.

“아이고야, 우리 엄마 벙어리인 줄 알았는데, 말도 할 줄 아네!”

어머니는 평소 말이 거의 없으시다. 시켜도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할 때가 많다.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계시거나 침대에 누워 계신다.

그런 엄마가 내 말에 눈을 번쩍 뜨고 반응할 때면, 그 자체로 기적처럼 느껴진다.

“미친년, 내가 어째 벙어리냐!”

그렇게 맞받아치시는 엄마가 반가워서 목젖이 보일 때까지 웃어제낀다. 벙어리라는 말이 엄마에게는 당신을 무시하는 것처럼 들리나 보다. 어릴 적 우리는 말못하는 사람을 벙어리라고 불렀고, 어머니는 청각이니 시각이니 하는 장애라는 말을 이해할 수준이 이제는 아니니 엄마가 알아듣게 쓴 말이다.

어라, 엄마가 반응을 했겠다.

하고 거기서 끝내면 싱겁다. 그렇게 끝나면 재미가 덜하니까,

“엄마, 엄마, 엄마—”

목청이 터져라 서너 번 불러놓고, 나는 또 장난을 친다.

“엄마, 나랑 오래오래 이 집에서 삽시다!”

그랬더니 엄마는 갑자기 진지해지며 속삭이듯 말씀하신다.

“그런 말 하면 일찍 죽는다. 그런 말 하지 말아라.”

그 말에 나는 순간 멍해졌다. 기습을 당한 사람처럼 있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엄마, 우리 빨리빨리 죽어버립시다!”

장난과 힘이 들어간 그 말에 엄마는 아무 대답이 없다. 아는 게 없는 당신이 생각해도 그건 또 아닌 모양이다. 대답 없이 가만 계신다. 빨리 죽기는 싫으신 거다. 나는 다시 방향을 틀어

“엄마, 우리 이 집에서 나랑 오래오래 같이 삽시다!”

하며 다시 오래 살자는 말을 꺼냈더니 이번에는 딸에게 시달리는 일이 귀찮고 성가셨는지

“니가 돈을 주고 살자 해도, 나는 너랑은 안 산다.”

나는 화들짝 놀랐다. 엄마가 정정하다. 누가 이런 엄마를 치매 걸린 노인이라고 하랴! 그 순간을 그냥 넘기기가 아깝다.

“엄마가 좋아하는 그 돈을 줘도 나랑은 안 산다구?”

엄마는 나를 흘겨보며 단단히 일침을 놓는다.

“그래, 이년아. 너랑은 죽어도 안 산다.”

그 말이 조금은 서운하고 엄마에게 이대로 질 수 없어 마구잡이로 떼를 쓰기 시작한다.

“엄마 나랑 오래 이 집에서 산다고 해? 산다고 하란 말이야! 그래야 엄마 자게 내가 방에서 나가 줄 거야, 얼른 하란 말이야, 얼른, 얼른.”

참, 내가 생각해도 자는 사람 깨워서 이렇게 소란을 피우는 사람이 참 귀찮겠다 싶다. 하지만 원하는 대답을 듣기 위해 나는 집요하게 엄마 팔을 잡고 늘어진다.

엄마는 지금까지 어떤 상황이 펼쳐졌는지를 또 금방 잊어버리신 모양이다. 당신이 무슨 말을 듣고 무슨 말을 했는지를 깜하게 잊고 왜 당신을 그렇게 괴롭히고 있냐는 눈빛을 하더니 곧 눈을 감고 만다.

오늘은 여기까지다. 이제는 엄마의 침대에서 물러나야할 때가 된 것이다.

웃고 떠들다 보니 얼굴의 근육이 풀리고 마음 한쪽에서 새어 나오던 냉기는 산뜻하게 사라져 있다.

엄마의 목소리와 표정이 내 안의 어둠을 몰아낸 것이다.

어머니는 올해 여든여섯이시다.

치매를 앓기 시작한 건 여든이 되기 전이었다.

처음엔 그리 심하지 않았다.

말씀도 조리가 있으셨고, 자식에 손자 손녀까지 또렷이 알아보셨다.

그런데 두 번의 시술을 받고 전신 마취를 겪은 뒤부터 인지능력이 눈에 띄게 떨어지셨다.

딸인 나를 알아보기도 했다가, 모르기도 했다가, 거의가 백지 상태다.

이제 그 깜빡임조차 낯설지 않다. 그 모든 게 쓸쓸하면서도 고맙다.

울적할 때면 엄마의 잠을 빌린다.

엄마의 ‘미친년’ 한마디가 나를 세상으로 돌려놓는다. 엄마는 잘 알고 계신 거다. 조금은 미치지 않고서는 살아가기 힘들다는 것을. 엄마의 ‘미친년’ 소리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앞으로 5년만이라도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엄마가 지금처럼 센터에 다니시며, 이 집에서 나와 함께 지낼 수 있으시면 좋겠다.

엄마,

그렇게 우리,

조금만 더 오래,

이 집에서 같이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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