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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록 56

문명은 서로를 스며들며 자라났다― 감염된 문명에 대한 사유

by 인상파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문학사상)


문명은 서로를 스며들며 자라났다― 감염된 문명에 대한 사유


문명은 서로를 스며들며 자라났다. 이 한 문장은 『총, 균, 쇠』를 덮은 뒤 내 머릿속에 오래 남았다. 묵직한 책을 말로만 듣다가 직접 읽어 보니, 그 두께에 대한 심적 부담은 생각보다 옅었다. 얄리의 질문에서 시작한 이 책은 이제 너무나 자명한 논리, 즉 인종적 우월이 아니라 환경적 요인이, 얄리가 말하는 ‘화물’, 곧 문명의 차이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각 장마다 반복적으로 언급하고 있어서 조금은 지루한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다이아몬드의 문장은 단순한 과학의 논리문이 아니었다. 그건 인간 문명의 태동을 해명하려는 하나의 거대한 은유였다. 그는 문명의 진보를 경쟁이나 정복의 결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문명이 서로 감염되고, 스며들고, 섞이면서 지금의 세계를 만들어 왔다고 말한다.


총은 힘의 전염이었고, 균은 생명의 전염이었으며, 쇠는 기술의 전염이었다. 그리고 언어는 기억의 전염이었다. 총, 균, 쇠의 전염으로 비문명국이 문명국이 되었다고 해도, 문자가 없었다면 그것은 문명이 아니었을 것이다. 총과 균과 쇠는 문명을 ‘움직이게’ 했지만, 문자는 문명을 ‘존재하게’ 했다. 언어가 없었다면 전염은 단지 감염으로 끝났을 것이다. 기술은 퍼졌겠지만, 의미는 남지 않았을 것이다. 문명은 언어를 통해 서로의 기억을 나누었다.


그렇기에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이후의 세계를 설명할 마지막 축은, 아마도 ‘언어’ 혹은 ‘문자’일지 모른다. 문명은 말로 감염되고, 문자로 기억된다. 그리고 그 언어의 감염은 오늘날에도 멈추지 않았다. 영어의 공용화는 단지 편의의 문제가 아니라, 한 언어가 세계의 사고 체계를 재편해 가는 현대적 감염의 형태다. 언어는 사라지지 않는 균처럼 남아, 세계의 의식과 문장을 하나의 문법 아래 묶어가고 있다.


읽는 내내 ‘우연과 환경’이 역사의 결정적 요인이라는 그의 논리가 조금은 반복적으로 느껴졌지만, 그 반복 속에는 묘한 힘이 있었다. 그건 설득이라기보다 서서히 스며드는 깨달음의 형태였다. 문명은 태어난 것이 아니라 옮겨온 것. 그것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처럼 다가왔다.


농경과 목축은 인류가 환경에 감염된 첫 번째 사건이었다. 사람은 더 많은 곡식을 얻기 위해 토양과 기후에 의존하게 되었고, 가축과의 밀접한 생활은 병원균의 교류, 즉 인간과 미생물의 공생이자 감염의 관계를 낳았다. 다이아몬드는 이것을 ‘환경적 결정’으로 설명한다. 곡식과 가축을 먼저 길들인 지역이 문명의 출발선에 섰고, 그 환경이 인간의 사회 구조, 정치, 종교까지 재편했다. 이때의 ‘전염’은 단순히 생물학적 감염만이 아니라, 생활방식의 전염이었다.


농경법과 가축 사육법은 교역과 전쟁을 통해 퍼져나갔고, 하나의 문명은 다른 문명의 생활양식을 감염시키며 전염되었다. 문명은 그렇게 생태적 감염과 사회적 전염 속에서 자라났다. 다이아몬드가 말한 세 가지 문명 요소, 총(Guns), 균(Germs), 쇠(Steel) 모두 감염적 확산성을 지닌 전염의 매개체였다.


다이아몬드는 유라시아 대륙을 문명의 가장 넓은 배양접시로 보았다. 그 이유는 연결성, 바로 지형의 방향성 때문이었다. 동서로 뻗은 지형 덕분에 작물과 가축, 병원균과 기술이 빠르게 전파될 수 있었다. 그 전염망이 서로의 문명을 감염시키며 상호 작용하며 함께 진화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반면 남북 방향의 대륙(아메리카·아프리카)은 기후대가 다르고 지형이 단절되어 ‘전염의 속도’가 느렸다. 결국 문명의 격차는 단지 자원의 차이가 아니라, 전염의 속도 차이, 즉 환경의 연결 구조 차이였다.


서구의 대항해와 식민 확장은 전염의 세계적 대유행(pandemic)이었다. 병균의 확산은 인류사의 역학적 재편성을 불러왔고, 총과 기술의 확산은 권력의 네트워크를 재구성했다. 스페인의 잉카 제국 정복은 그 상징적 사건이다. 총과 말, 그리고 천연두는 잉카의 사회 구조를 무너뜨렸다. 이것은 단순한 정복이 아니라, 한 문명의 체계가 다른 문명에 감염된 사건이었다. 전염의 속도와 범위가 문명의 진화를 결정했고, 감염은 파괴가 아니라 전이의 방식이었다.


다이아몬드의 언어는 그것을 객관적 문장으로 증명했지만, 그가 그린 세계의 밑바닥에는 인류 전체가 공유하는 하나의 운명적 감염의 서사가 깔려 있었다. 총과 균과 쇠, 그 모든 것은 결국 감염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 사실은 문명을 살아 있는 하나의 생명체로 보게 했고, 우리 자신과 닮아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했다. 사람도 자기 자신만으로는 문명이 되지 못한다. 한 인간의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옮겨지고, 그 옮김이 공감과 모방, 대화와 기록으로 확장될 때 비로소 인간은 문명의 일부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특별 증보면 〈일본인은 어디에서 왔는가〉를 읽을 때 오래전부터 품고 있던 생각과 마주했다. 백제 문화가 일본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에 어느 정도 자부심을 품어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것이 혹시 우리만의 주장, 어쩌면 민족적 자기 서사였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일본이 한국과의 역사적 관계를 다르게 해석하듯 우리 역시 우리 식의 내러티브를 만들어 온 것은 아닐까.


그런데 다이아몬드는 이 문제를 감정이 아닌 과학으로 다루었다. 그는 일본 문명의 형성이 한반도와 중국으로부터의 지속적인 문화적 감염의 과정이었다고 말한다. 철기와 집약 농업, 종교, 사회조직 등 일본 근간의 거의 모든 요소가 대륙에서 바다를 건너온 것이라는 그의 설명은 우리의 오래된 기억을 증명이라기보다 복원해 주는 듯했다. 백제와 고구려, 신라를 거친 한반도의 문화적 전파는 단지 기술의 이전이 아니라, 정신과 언어, 제도의 확산이었다. 문화가 옮겨간다는 것은 단순히 모방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가 스며드는 일이다. 다이아몬드의 언어는 그 사실을 다시 일깨워주었다. 그렇게 보면 일본과 한국의 관계는 정복과 경쟁의 관계가 아니라 오래된 감염과 변이의 관계였다. 감염은 굴욕이 아니라 생존의 다른 이름이며, 문명은 그 감염을 통해 자라난다.


문명은 지금도 여전히, 서로의 언어와 문자를 통해 천천히 감염되고 있다. 그 느린 감염 속에서, 인류는 역사를 천천히 써 내려가고 있다. 그러나 지구상에서 여전히 전쟁도 멈추지 않고 있다. 총과 쇠가 충돌하며, 감염과 전염이 아닌 파괴와 죽음의 언어로 세상을 물들인다. 문명이 서로를 스며들며 자라났던 그 시간 속에서도,인간은 끝내 자신을 감염시키는 폭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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