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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록 61

스물세 살의 각혈에서 집으로 돌아온 스물일곱까지

by 인상파

이상 「봉별기」(문학과지성사)


스물세 살의 각혈에서 집으로 돌아온 스물일곱까지


이상의 〈봉별기〉는 “스물세 살이오―삼월이오―각혈이다.”라는 한 줄로 문을 연다. 세 단어는 짧고도 선연하게, 겨울 끝자락의 가지에 매달린 붉은 동백처럼 독자의 가슴을 두드린다. 처음 이 문장을 읽었을 때, “아아, 정말 천재구나”라는 말이 절로 터져 나왔다. 천재 작가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할 때면, 나는 우선 경외부터 하고 그 부족함을 내 탓으로 돌리는 버릇이 있다. 스물세 살의 봄을, 각혈이라는 붉은 언어로 시작하다니, 이 얼마나 기이하고도 눈부신 시작인가.


그러나 그의 삶과 병을 떠올리면, 이 문장은 더 이상 기괴한 천재의 감수성만은 아니다. 청춘의 나이와 계절의 생동, 그리고 폐결핵이라는 서늘한 죽음의 숨결이 한 문장 안에서 얽히며 생의 찬란함과 소멸의 냄새가 동시에 피어오른다.


‘봉별기’라는 제목은 ‘만남과 이별의 기록’을 뜻한다. 하지만 이상에게 이 이별은 단지 한 연인과의 결별이 아니라 자신의 붕괴하는 육체, 무너지는 삶, 사라져가는 세계와의 마지막 인사에 가까웠다. 그는 금홍과의 파탄난 결혼 생활을 회상하며 사랑과 욕망, 예술과 현실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는 순간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 작품에서 이상은 자신의 필명을 직접 드러낸다. 이는 단순한 장치가 아니라, 이 글이 곧 그의 삶의 기록이고 고백임을 보여주는 징표다. 제목에서 말하는 ‘만남’은 금홍과의 사랑일 것이고, ‘이별’은 그 사랑의 끝이며 또한 죽음에 가까운 자기 자신과의 결별을 뜻한다.


금홍과 헤어진 뒤 그는 “스물한 해 만에 본 집”으로 돌아온다. 그가 마주한 것은 늙어버린 집, 그리고 그 집만큼이나 노쇠해진 자기 모습이다. 그는 “스물일곱 살이나 먹어버렸다”고 적는다. 청춘의 나이라기엔 너무 일찍, 그러나 삶의 무게를 지탱하기에는 이미 너무 늙어버린 나이처럼 말이다. 더욱이 ‘스물일곱’은 이상이 실제로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난 나이였다. 이 문장은 죽음이 문턱까지 다가왔다는 예언의 문장, 혹은 스스로에게 건네는 죽음의 확인서처럼 읽힌다.


이 지점에서 독자는 현실의 이상과 작품 속 ‘나’가 완전히 겹쳐지는 순간을 본다. 집으로의 귀환은 안식이 아니라, 임종을 앞둔 자가 생전에 머물던 공간을 다시 찾아온 듯한 귀소 본능처럼 받아들여진다. 〈봉별기〉의 마지막은 사랑의 실패를 넘어, 삶 전체와의 봉별(逢別)로 읽힌다.


〈봉별기〉에서 ‘이상’이라는 필명을 노출하는 것처럼, 이 작품 속 금홍은 단순한 소설적 인물이 아니라 실제 인물로 존재한다. 이상은 금홍이 다른 남자에게 몸을 내맡기는 장면을 바라보거나, 자신이 아는 남자를 그녀의 방에 들이는 장면까지 담담히 서술한다. 여기에는 도덕적 분노보다 무력함, 허무, 냉소가 교차한다. 그는 고통 속에서도 자신을 감정의 중심에 두지 않고, 스스로를 철저히 관찰자의 자리로 물러나게 한다. 그에게 사랑의 파탄은 단순한 배신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덧없음, 육체의 허무를 인식하는 계기다.


이러한 인식은 〈날개〉의 화자에게서도 반복된다. 〈날개〉의 남편 역시 아내가 다른 남자에게 몸을 파는 것을 알고도 저항하지 못한 채, 그녀의 방을 들락거리며 그녀의 물건을 만지작거리고, 점점 자기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간다. 그는 사회적 현실로부터 단절된 무기력한 지성인의 전형이며, 자기 존재가 서서히 분해되고 있음을 감지하지 못한 채 붕괴해가는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존재가 서서히 금이 가고 있음을 느끼지만, 무기력하게 인공적 비상을 꿈꾸다가 추락의 순간을 맞이한다. 이때의 ‘추락’은 단순한 신체적 이미지가 아니라 자아가 처음으로 산산이 흩어지는 징후다.


결국 〈봉별기〉와 〈날개〉 모두에서 이상의 화자는 자기 소멸과 자기 해체의 서사를 살아간다. 사랑은 그에게 구원이 아니라, 오히려 존재 파괴의 장치다. 금홍의 방은 〈날개〉의 아내 방과 닮아있다. 두 공간은 욕망과 굴욕, 관음과 자기 소외가 교차하는 폐쇄적 공간이다. 이 공간들 속에서 그는 타인의 시선으로 자기 자신을 바라보며, 인간으로서의 감각을 잃어간다.


〈봉별기〉는 이 균열이 급격히 심화된 단계의 기록이다. 여기서의 ‘각혈’은 병의 증상이기 이전에, 분열된 자아가 마침내 표면으로 터져 나온 붉은 파열처럼 읽힌다. 사랑의 붕괴, 몸의 쇠락, 삶의 기울어짐이 한데 겹치며 그의 내면은 더 이상 숨길 수 없을 만큼 심각하게 흔들린다.


〈날개〉에서 내면으로 침잠하던 목소리는 〈봉별기〉에서 피와 고백의 언어로 변해, 자기 붕괴의 실체를 드러낸다. 그리고 이 해체의 마지막 단계가〈종생기〉이다. 여기서 그는 똑같이 필명을 드러내면서, 죽음을 앞둔 자의 조용한 침묵이 아니라 허세와 자기 환멸, 분열이 뒤엉킨 상태로 삶의 끈을 놓지 않으려 애쓴다. 그러나 그 몸부림은 결국 체념의 목소리로 가라앉으며 자신의 생을 정리하는 결말로 이어진다. 이 시점에서 이상은 더 이상 작가나 관찰자가 아니라, 붕괴를 통과한 자가 맞이하는 죽음 그 자체가 된다. 아, 바로 그 죽음의 지점에서 〈종생기〉는 마침내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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