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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독서록

말하지 않은 기도

by 인상파

마크 트웨인의 《전쟁을 위한 기도》(돌베개)


말하지 않은 기도


이 작품은 오랫동안 우리 집 거실 중앙에 꽂혀, 작은 몸피에도 불구하고 묵직한 위력을 과시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표지의 검은 질감과 삽화의 거친 선, 그리고 붉은 띠지가 내뿜는 기운은 마치 ‘전쟁을 위한 기도’가 품고 있는 음울한 진실을 환기시키듯 나를 주시했다. 교회에서 전쟁의 승리를 위해 기도를 올리던 목사가 차마 내뱉지 못한 말, 그러나 노인이 나타나 적나라하게 드러낸 그 기도의 속뜻은 책을 펼칠 때마다 나를 불편하게 흔들었다. 그것은 단지 전쟁에 대한 고발이 아니었다.


살아오며 내가 무심코 내뱉은 말들, 누군가의 안녕을 빌며 동시에 다른 누군가의 자리를 빼앗아야만 가능한 소망들, 나의 편의를 위한 기도, 나의 이익을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바람—그 모든 것들이 때로는 다른 사람에게 해악과 상처로 번졌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직면하게 했다. 선의를 입은 욕망, 축복을 가장한 이기심, 진심이라 믿었던 말의 이면에 숨어 있던 잔상들. 트웨인이 폭로한 ‘말하지 않은 기도’는 결국 나 역시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비추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원하는 것의 이면에는 늘 누군가의 원치 않는 바람과 거부, 저항이 숨어 있음을 뜻했다. 내가 얻기를 바라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잃고 싶지 않은 무엇이며, 내가 꿈꾸는 축복은 다른 이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불행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 무엇인가를 바라며 드리는 기도에 그런 어두운 그림자가 배어 있다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은 채 드리는 목사의 기도는 결국 아군과 적군을 가르며 우리 편만 살게 하고 저편은 죽게 해달라는 요구이자, 폭력을 신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주문에 다름 아니었다. 그러나 자애로운 신이라면 어느 편을 들어주고 어느 편을 버리는 존재가 아닐 것이다. 신은 편을 가르는 순간 신이기를 그만두고, 그 자리에는 인간의 탐욕과 광기만 남는다.


전쟁은 언제나 반전으로 움직인다. 겉과 속이 어긋나고, 말과 실체가 뒤집히고, 축복과 저주가 뒤섞이며 진실은 증발한다. 마크 트웨인의 〈전쟁을 위한 기도〉는 그 반전을 가장 노골적인 방식으로 드러낸 작품이다. 사람들은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장엄한 찬송가를 부르며 “우리에게 승리를 주소서”라고 기도한다. 그 경건함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낯선 노인이 교회 중앙에 걸어와 그 기도를 해석하는 순간, 모든 것이 뒤집힌다.


“우리를 도우시어 우리의 포탄으로 저들의 병사들을 갈기갈기 찢어 피 흘리게 하소서.”


“우리를 도우시어 저들의 청명한 벌판을 저들 애국자들의 창백한 주검으로 뒤덮게 하소서.”


부상병들이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내지르는 비명, 누추한 집들이 잿더미가 되고, 죄 없는 과부들이 비통에 빠져 가슴을 쥐어뜯고, 어린 자식들과 함께 흙바람 이는 황폐한 땅을 떠돌아야 하는 현실… 이 모든 참혹함을 ‘우리의 승리를 위해’ 요청하는 것이 바로 그 기도의 숨은 뜻이었다.


우리 편을 지켜달라는 말은 결국 저편의 파멸과 죽음을 허락해달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영광을 달라는 말은 누군가에게는 치욕을 요구하는 주문이다. 전쟁은 기도의 언어를 빌려 폭력을 정당화하고, 폭력은 경건함을 빌려 자신의 잔혹함을 감춘다. 축복이 실은 저주였다는 사실.


특히 이 책은 영화 〈서부전선 이상 없다〉를 떠올리게 한다. “이상 없다”고 당국에 보고된 그 문구는 실은 얼마나 많은 죽음과 피비린내와 절규를 통째로 지워버린 표현이었던가. 참호 속에서 썩어가던 젊은 병사들의 시신, 포격에 날아간 팔다리, 두려움에 떨며 밤을 지새운 소년병들의 흐느낌—그 모든 실재를 가린 채 단 네 글자로 상황을 ‘정상’이라 말하는 냉담함. 마크 트웨인이 드러낸 기도의 이면처럼, 그 문구 또한 말하지 않은 것들이 훨씬 더 많았다. 문장 속 공백에는 기록되지 않은 죽음들이 가득했고, 보고 되지 않은 비명들이 진흙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전쟁은 어떤 말을 갖다 붙인다 해도 한쪽의 승리가 상대의 죽음과 피비린내를 포함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고상한 이름을 갖다붙여도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승리라는 말의 밑바닥에는 늘 누군가의 시신이 겹겹이 놓여 있다. 기도 속에서 노인이 드러낸 진실처럼, 병사의 죽음은 그 한 사람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집안의 아버지를 잃는 일이자, 어떤 여인에게는 남편의 부재이며, 어린 자식에게는 하루아침에 고아가 되는 비극이다.


전쟁은 병사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살아남은 이들에게 죄의식과 상처를 남겨 평생을 흔들어놓는다. 폐허가 된 마을은 전쟁이 끝나도 오랫동안 생명을 품지 못한다. 집을 잃은 가족들은 부서진 잿더미 위를 헤매고, 먹을 것을 찾으려 떠난 길에서 또 다른 위험을 만난다. 전쟁은 전선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이들의 삶 전체를 폐허로 만든다.


이 모든 참혹함이 ‘이상 없다’는 네 글자 속에 묻히고, ‘승리를 위한 기도’라는 경건한 주문 아래 땅 속 뿌리처럼 숨겨진다는 사실. 그 침묵의 무게를 떠올릴 때마다, 트웨인이 폭로한 기도의 속뜻이 결국 인간의 일상까지 뒤흔드는 잔인한 반전임을 뼈저리게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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