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함을 품은 채 서로에게 다가가는 일
장 자끄 상뻬의 《얼굴 빨개지는 아이》(열린책들)
결함을 품은 채 서로에게 다가가는 일
장 자끄 상뻬의 《자전거를 못 타는 아이》도 그렇고 《얼굴 빨개지는 아이》도 그렇듯, 그의 작품 속 아이들은 결함을 품은 채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상뻬 특유의 섬세하고 따뜻한 선은 그 결함을 숨기거나 지우는 대신 오히려 더 선명하게 드러내어, 그 아이들이 지닌 삶의 결을 한층 깊게 만든다. 그의 삽화가 빛나는 또 다른 작품 《좀머씨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다.
결함이나 결핍이 삶을 무너뜨리는 요인이 아니라 오히려 살아가게 하는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상뻬는 여실히 보여준다. 그의 세계에서는 서툴고 흔들리고 모자란 부분들이 부끄러움이 아니라, 각자 살아가는 방식의 고유한 흔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상뻬의 얼굴 빨개지는 아이는 오래전부터 내 마음속에 숨어 나를 지켜보는 아이였다. 어리지만 용감하고, 씩씩하고, 사랑스러운 그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얼굴이 빨개져야 할 때는 빨개지지 않고 말도 안 되는 순간에는 갑자기 붉어져, 붉은 얼굴을 들고 다녀야 하는 고초와 부끄러움을 견디며 살았다. 외로움을 달고 살았던 아이.
그러나 그것이 그 아이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나도 오래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마르슬랭에게는 자신의 얼굴이 언제, 왜, 어떤 이유로 빨개지는지 알 수 없다는 답답함이 따라다닌다. 사람들의 시선에 당황하고, 놀림을 받으면 숨고, 숨으면 또다시 더 빨개지는 악순환 속에서 그는 오래도록 혼자였다.
그러나 어느 시기부터 마르슬랭은 그런 자신의 기질을 조금씩 받아들이며 자기만의 리듬을 갖기 시작한다. 어쩌면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은 그 결함을 바꾸거나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결함과 적절히 화해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살다 보면 어느 순간, 결함을 가진 존재가 자신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된다. 누구나 저마다의 결함으로 흔들리고, 제멋대로 반응하는 몸과 마음을 달래지 못해 스스로를 낯설어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누군가는 말을 더듬고, 누군가는 별것 아닌 일에도 눈물이 터지고, 누군가는 아무 이유 없이 르네처럼 재채기를 하고, 어떤 사람은 마르슬랭처럼 얼굴이 쉽게 붉어진다.
결함처럼 보이는 것들은 사실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드러내고 싶지 않은 불편한 진실이며, 그 진실은 그것대로 또 다른 진실을 알아보는 정서적 틈이 된다. 우리가 감추고 싶어 하는 바로 그 부분이 다른 누군가의 상처와 맞닿을 때 비로소 서로를 알아보게 된다. 흔들리고, 어긋나고, 예기치 않은 순간 무너져버리는 자기만의 결함을 품은 존재끼리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알아보는 묘한 친밀함이 그 틈에서 열린다. 그리고 그 틈을 통해 사람은 사람에게 조금씩 가까워진다.
결함은 더 이상 숨겨야 할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이어주는 작은 징표가 된다. 마르슬랭이 르네의 재채기 소리를 따라 계단을 한 층씩 올라갔던 장면은 우리가 살아가며 만나게 되는 인연의 시작과 닮아 있다. 우리를 이끄는 것은 언제나 거창하고 대단한 사건이 아니라, 스쳐 지나갈 듯한 아주 작은 우연, 미약한 울림, 그 어딘가에 닿아오는 묘한 친근함이다.
누군가 상대의 결함을 결함으로 보지 않고 그 사람의 속성 그대로 바라봐줄 때, 판단에 앞서 공감으로 받아줄 때, 비로소 우리는 반쪽짜리가 아닌 전체로서의 ‘나’를 얻는다. 그 작은 공간 안에서 결함은 숨겨야 할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이어지기 위한 작은 문이 된다. 결함이 결함의 가치를 알아보고 받아들일 때 우정은 깊어지고, 사랑은 너그러워지고, 인간은 인간에게로 가까워진다.
살아간다는 것은 결함을 고쳐가는 일이 아니라, 그 결함을 품은 채 서로에게 다가가는 일이라는 사실을 상뻬의 얼굴 빨개지는 아이는 일러준다. 자기와 닮은 존재에게 이끌리고, 그 존재 앞에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허락된 만남의 소중한 장이며, 삶이 부여하는 깊은 은총이기도 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