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념
남편의 병적인 반복 행동을 어떻게 말릴 수가 없다. 지친다. 입 밖으로 운명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남편에게 시시각각 다가오는 병마를 두고 이런 말이나 내뱉다니! ‘운명’이라니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하지만 운명이 아니라고 해도 운명이라고 받아들여야 이 상황을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이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는 카드가 없으니 그저 받아들이게 되면 조금은 체념할 수 있으니. 하지만, 운명이라니, 잔인하다. 누가 아프고 싶어서 아픈가 말이다.
머릿속에서 남편을 벌써 떠나보낼 준비를 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생각을 절단시킬 수 있으면 좋겠다. 이러지 말자 스스로 다독이며 관심을 딴 데로 돌리는데 돌아서면 다시 그 생각으로 되돌아가 있다. 남편의 상태가 평상시와 판이하게 달라져 ‘올 게 오고 말았구나.’하며 우려하던 차에 의사는 MRI 사진상에 수술한 전두엽 뒤쪽으로 종양이 크게 보인다고 밝혔다. 잦은 발작과 함께 기억이 전무해진 것이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는데 종양이 그렇게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 남편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미 늦어버린 것은 아닐까? 어느 날 갑자기 홀연히 떠나버린 것은 아닐는지. 가슴에서 덜컥거리는 소리가 난다. 앞으로 이런 생활이 얼마나 갈 수 있을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나 남았을까. 남편이 가고 나면 그 빈자리에서 죽을 때까지 어떻게 시간을 때우며 살아는 가겠지.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다. 이미 나는 남편을 잃어버린 것 같다. 이 지독한 외로움을 덜어보고자 이야기를 나눌 상대를 떠올려본다. 하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다. 아니, 내 어둠과 울적함을 전가시켜서는 안 된다. 그저 혼자 견디고 말면 된다.
남편은 제 몸이 망가져가고 있는 것도 모르고 컴퓨터 앞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컴퓨터 앞에서 시간을 때우고 있는 남편에게 무슨 말을 하고 어떻게 도움을 줘야 하나. 제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가혹한 시간을 견디는 방법으로 인터넷이 좋은 친구일지 모른다. 망각의 벗으로. 내내 자신을 잃어가면서 그 잃음을 모르고 생을 마무리하는 것도 나름 괜찮지 않을까. 결국 인간은 모든 것을 잃은 뒤에 떠날 수 있으니.
창문을 열고 서늘한 밤공기을 마신다. 아침과는 달리 묵중한 안개는 물러갔다. 볕이 나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자연은 때가 되면 물러설 줄 아는데 남편의 병세는 악화되고 있다. 오리무중이다. 안개가 햇볕 속으로 사라지듯, 남편의 병세도 그렇게 사라지면 오죽 좋을까.(2010년 11월 5일 금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