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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상파 Jan 11. 2024

간병일기 06

한밤중

어렵사리 구한 시간제 아르바이트.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문고에 출근한 지 일주일째다. 병세가 악화되고 있는 남편을 두고 늦은 밤에 3시간 정도 집을 비운 미친 짓을 하고 있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믿고 싶은 것이다. 이토록 안일한 생각으로 일을 접지 못하고 있다. 집에서 아빠랑 있는 것이 불안한지 두 아이가 엄마를 따라나섰다. 혼자 있는 남편이 신경 쓰여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지만 눈에 보이지 않으니 불안과 걱정도 점차 가라앉았다. 남편과의 물리적인 거리가 심리적인 불안감을 잠재우기도 한다. 문고에서 해야 할 일들이 서서히 눈에 띄기 시작한다. 

한 시간 후 두 아이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집에 가서 꼭 아빠의 동정을 보고하라고 했다. 컴퓨터를 하고 있다는 전화가 왔다. 별일 없었구나! 문고에 책을 빌리러 오는 사람이 없어 한 시간 동안 독서를 하고 일기를 끄적였다. 남은 한 시간은 문고 청소를 하면서 뒷정리를 했다. 파손된 책을 손보고 문고 옆 독서실을 한 바퀴 돌면서 파수꾼의 임무를 다했다.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밤 12시가 넘는다. 내 마음이 급하게 요동친다. 가슴이 조마조마해진다. 집에 들어서면, 두 아이는 잠이 들었을 것이고 남편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기가 겁이 난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남편이 이제 오냐며 반갑게 맞아준다. 눈물이 나오려 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무탈하다는 사실이. 겨우 세 시간 정도 떨어져 있었건만 며칠 만에 보는 얼굴 같다. 우리는 서로가 반갑다. 

남편은 밤 늦게 아르바이트를 하고 온 내게 수고했다고 등을 토닥인다. 피곤하면 그만 두라고 하지만 벌이도 시원찮은 마당에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나서는 아내가 고마운가 보다. 남편의 건강이 유지되어 이 일을 계속해나갔으면 좋겠다. 밤 9시에서 12시까지의 아르바이트는 내게 여러모로 유익하다. 그 시간이면 식구들 저녁을 해결했겠다, 열 시쯤이면 아이들도 잠이 들겠다, 늦은 시간이라 문고를 찾는 사람이 드물어 자유 시간도 누리겠다, 일석삼조다. 

대충 씻고 잠자리에 들려는데 남편은 컴퓨터 앞에서 일어설 줄 모른다. 피곤하여 먼저 들어간다고 하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자다보니 남편의 자리가 비었다. 몸을 일으키기 싫어 안방에서 몇 번씩 사람을 불렀다. 이제 그만 자자고. 사람이 금방 들어온다고 해놓고서는 또 감감무소식이다. 결국 거실로 나와 사람 잠도 못 자게 하냐고 퉁명스럽게 굴었더니 컴퓨터를 끈다. 안방에 들어와 누웠다. 자다가 옆자리를 더듬었더니 사람이 없다. 여직 사람이 들어오지 않았단 말인가. 이번에는 문틈 사이로 거실의 불빛도 보이지 않는다. 

사람이 어딜 간 걸까. 화장실이다. 화장실에 들어가면서 거실 불은 왜 껐는지 모르겠다. 사람 불안하게. 남편은 잠자기 전에 머리를 감는 버릇이 있다. 그런데 자기가 머리를 감았다는 사실을 잊고 감고 나서 또 감고 또 감고 한 모양이다. 나를 보자 수건으로 말린 흔적이 역력한 머리를 또 감겠다고 세면대로 머리를 갖다 댄다. 나는 눈물이 갑자기 핑 돈다. 이 사람이 머리 감는 것에 꽂혀 안방으로 들어오지 못했구나!

머리를 감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려고 젖은 수건과 아직 식지 않은 드라이기를 들이밀었으나 남편은 믿으려 하지 않았다. 머리 감은 사실을 극구 부정하면서 머리를 감아야한다고 고집을 부린다. 머리를 감겨주겠다고 하니 거절하지 않는다. 건선 피부염을 앓고 있는 남편의 머리에 가려움이 덜 하라고 니조랄 샴푸를 썼다. 머리를 감기고 나니 시간은 새벽으로 성큼 다가와 있었다.(2010년 11월 4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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