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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상파 Jan 12. 2024

어머니 말씀 01

시골에서 어머니가 올라오시다

작년에 시어머니가 세상을 뜨셨다. 어머니 당신은 치매 걸린 아버님보다 더 오래 살 거라고 믿고 계셨는데 아픈 아버님을 돌보시다가 쓰러져 그만 세상을 뜨고 마셨다. 살아서는 절대로 요양원에 가지 않겠다고 우기셔서 어머님이 집에서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아 아버님을 돌봤는데 어머님이 그렇게 되고나자 아버님에게는 선택권이 없어졌다. 자식들의 뜻에 따라 그토록 거부했던 요양병원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한 번 고비를 넘기신 아버님은 지금 요양병원에 계신다. 

친정아버지가 예순 넘어 쓰러져 자리보전을 하게 되었을 때 친정어머니는 아버님을 돌보면서 바다로 들로 갯것하고 농사짓느라 분주한 세월을 보내셨다. 친정아버지는 열다섯 해를 앓다가 가셨다. 어머니는 치매를 앓은 아버지가 혼자 듣기 아까운 욕설을 해댄다고 자식들에게 흉을 보곤 하셨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거짓말을 한다고 역정을 내셨지만 그것이 거짓말은 아니었음을 어머니 당신이 치매에 걸려 보여주신 행동으로 믿게 되었다. 어머니가 간간히 내뱉은 욕설을 들으면서 나는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형제들에게 고자질을 하게 된다.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신지 12년. 친정어머니 연세 여든에 치매가 찾아왔다. 어머니가 제일 무서워하는 병이다. 나는 어머니에게 치매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어머니는 상황파악이 안 되면 밑도 끝도 없이 너무나 당연하고 확실한 일에 질문을 퍼붓는다. 그럴 때 마침표처럼 내뱉은 말이 어머니 연세가 많아서 멍청해졌고 그래서 잘 잊어먹는다고 콕 찍어 일러드린다. 하지만 어머니의 기억력은 언제나 출발선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한다. 하루에도 수십 번 당신이 왜 이곳 딸집에 와 있는지를 묻는다. 당신 혼자는 죽어도 못 올 이곳으로 누가 데려왔으며 언제 그곳 시골에 데려다 줄 거냐고 묻는다. 돌아서면 잊어버린 것이 어머니의 장기이기에 어머니의 똑같은 질문이 반복될 때마다 나는 점점 수렁으로 빠져든 느낌이다.

어머니와 동거를 시작하면서 내 생활에도 변화가 일었다. 음식이 바뀌고 잠시간대가 달라졌다. 시원찮은 이 때문에 씹지를 못하니 자연 주식은 죽으로 바뀌고 반찬은 무르고 부드러워졌다. 생활환경이 바뀌어서인지 어머니는 잠을 잘 못 주무신다. 당신을 시커먼 방에 가둬놓고 다 어디 가 있냐고 분해하신다. 시골에서 혼자 사셨던 양반이 우리 집으로 오시고는 잠을 못 이뤄 어머니와 잠드는 시간대가 같아졌다. 

어머니가 노인 유치원이라는 센터에 가시게 되면서 아침나절도 분주해졌다. 어머니가  일어나기 싫어하실 때면 반강제로 깨우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어머니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어머니도 아침이면  더 누워있고 싶은 날이 있으실 거다. 그걸 무시하고 일정한 패턴으로 움직이려고 하니 어머니는 자주 노하셨다. 어머니가 싫어하시는 센터를 보내면서 자주 내 인내심과 한계를 실험하게 된다.

평생 농사꾼으로 살다가 여든 넘어 명색이 유치원을 들어가시는 어머니. 일을 손에 놓고 놀이로 생활을 바꾸라고 하니 그것이 당신의 생리에 맞을 리가 없다. 더욱이 아무도 모르는 사람들 틈에 섞인다는 건 멀쩡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고역인가. 당신의 세계는 어둠에 갇히고 사방이 미로인 세상에서 생전 처음 보는 낯선 얼굴들과 대면해야 하니 말이다.  보는 눈이 있어 바보로 보이고 싶지는 않고, 낯선 사람에게 미움은 사고 싶지 않으니 아는 것도 모르는 척, 몰라도 아는 척하며 계신 모양이다. 가만 앉아있으면 중간 정도는 간다는 걸 아시는 거다.

어머니가 유치원을 안 가겠다고 떼를 쓰실 때는 어릴 적 우리 아이들이 유치원을 가기 싫어할 때와 영락없다. 아파트 지하주차장으로 센터 차가 도착하기 전까지 안 가면 안 되느냐고  묻는 것을 잊고 또 묻고 물으면서 짠하게 구신다. 자식들 뒷바라지하며 아픈 남편 수발하느라 고생하셨던 어머니가 이제는 나이를 거꾸로 먹어가고 있다. 뚜벅뚜벅 홀로 사셨던 양반이 이제는 도움없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돼 유년으로 돌아가고 있다. 유치원을 안 가겠다고 날마다 고집을 피우시는 어머니는 지금 나이를 거꾸로 먹어가고 있는 중이다. 

어머니를 맞이할 준비가 안 된 상태라 이렇게 버거운 것일까. 생각해보면 준비된 삶은 없었다. 연애와 결혼이 그렇고, 부모 되는 일이 그렇고, 사별이 그랬다. 준비되지 않은 채 밀려오는 것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살면서 준비를 하고,  준비하며 살면서 인생의 숙제를 풀어왔다. 살면서 비슷한 상황을 맞닥뜨리면 그때는 처음보다 조금 덜 서툴게 처신할 수 있다뿐. 어머니와도 살다보면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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