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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상파 Jan 13. 2024

간병일기 08

불안을 쫓으며

잠다운 잠을 자본 적이 언제던가. 불안한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낮에 식탁에 앉아 오분 십분 꾸벅꾸벅 졸고 나면 띵한 머리가 맑아오는 느낌이다. 그러고 나면 새벽안개처럼 무더기로 피어나는 우울한 기운이 잠시 내 곁에서 물러난다. 잠의 나락으로 떨어졌던 짧은 순간이 가져다준 평온함이다. 하지만 그것을 가둬둔 덮개가 열리는 것은 시간문제. 다시 슬픔의 기운은 모락모락 피어나 나를 점령하고, 내 안에다 성을 쌓는다. 나를 제 집삼아 우울은 어디까지 제 영역을 확장할 셈인가. 나는 우울로 차고 넘친다. 

시야를 헤아릴 수 없는 안개 같은 불투명한 세상에 아무렇게나 나를 던져버리고 싶다. 스스로를 방기하고 방치하고 싶다. '나'이기를 그만두고 싶다. 이래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를 질책해보지만 그것은 잠깐이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아이들이 있다. 큰 놈, 작은 놈 걱정되지 않은 아이가 없다. 우습다. 왜 아픈 사람을 걱정하지 않고 살아갈 사람을 걱정하고 있는 거냐? 살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갈 것이다. 문제는 떠날 사람이고 그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이고 그 사람이 남긴 빈자리를 감당하는 일일 것이다. 결국 죽음은 삶의 문제다.


여보, 당신이 저를 울리는군요. 당신 아직 제 곁에 있는 것 맞지요? 그런데 왜 저는 당신이 이미 떠나버린 사람 같은지 모르겠습니다. 허허벌판에 혼자 서있는 느낌이랄까요.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겠지요. 기억을 잃었다고 마음까지 잃은 것은 아닐 테니까요. 마음이 단단해져야 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어요. 심약한 생각은 금물이지요. 세상이 떠나갈 듯 한바탕 소리라도 지르고 나면 그런 심약한 생각은 겁을 먹고 사라질까요. 하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저 멍하니 시간만 죽이고 있습니다.

기억이 가물거리는 당신을 지켜보면서 무슨 대단한 결심을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직 당신 괜찮은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너무 많은 일들을 미리 앞당겨 생각하지 않기로 합니다. 당신이 지금 여기 우리 곁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을 기억하기로 합니다. 그것말고는 중요한 일은 없지요. 그러니 조금은 힘을 내도록 하겠습니다. 

고요해 보이는 바다에 지금 고립돼 있더라도 아직은 난파되지 않았으니 그런 대로 견딜만한 거라고 주절주절 이렇게 적어봅니다. 이렇게 적어가다 보면 어두운 생이 아주 어둡지는 않아 보이고, 저 멀리서 희미한 불빛이 가물거린 듯도 합니다. 숨도 돌려지고 다시 시작할 마음도 먹게 됩니다. 당신을 불러냈지만 결국 저 스스로에게 말 걸기합니다. (2010년 11월 6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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