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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상파 Jan 14. 2024

간병일기 09

바보처럼 살아도

생기랄까, 정기랄까, 영혼이랄까? 사람에게서 풍겨지는 그런 것이 남편에게서 느껴지지 않는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그의 존재감이 이렇게 사그라들 수 있을까? 지금의 남편이 내가 알고 있는 그와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달라도 너무 달라 낯설다. 내가 변한 것이냐, 남편이 달라진 것이냐. 생의 동반자이던 그가 갑자기 나의 타자가 돼 버렸다. 

그가 오늘 아침에는 이불속에서 옛 노래를 흥얼거린다. 음정과 박자는 맞지 않지만 가사는 또렷하게 들린다. 김현식의 '사랑 사랑 사랑' 노래다. 잠도 잘 못자고 신경을 쓰다보니 몸이 탈이 나 어젯밤부터 몸에서 한기가 느껴졌다. 몸살이 시작되려나 보다. 몸살이 시작되면 치통이 동반돼 앓는 소리가 저절로 새어나온다. 간만에 일찍 눈을 뜨게 돼 남편은 기분이 좋은 걸까. 남편의 흥을 깨고 싶지 않아 나도 목소리를 보탰다. 부창부수다. 아무 것도 모르는 바보천치들 같다. 흥겹게 부르는데도 서럽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날들이 얼마나 남았을까. 바보라도 좋다. 그저 내키는 대로 아무 때나 흥얼거리며 바보처럼 살아도 좋으리라.

한때는 ‘나’라는 존재의 의의와 의미에 대해, 그 방향과 종국에 대해 과도하게 병적으로 사유해 왔다. 그럼으로써 ‘나’ 의 본질을 찾았다기보다는 오히려 스스로를 좀먹는 결과를 가져왔다. 어찌할 수 없어 자신을 파괴하려 드는 숱한 날들로 이어졌다. 그러나 지금은 나 자신이 아니라 남편이 무너져 내리는 걸 지켜봐야 한다. 아이들이 병치레를 할 때는 아이들이 낫기를 바라는 그 일념으로 비록 흔들릴지언정 쓰러지는 법 없이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그런데 남편의 병세가 악화되자 나부터 넘어지려 한다. 

인생에 뭐 대단한 미련이 남아있는 것도 아니면서 죽음의 무게에 짓눌려 압사당할 것 같은 심정이다. 삶이든 죽음이든 조금은 덜어내며 살자. 그래, 사람 살아가는 게 뭐 별거더냐. 태어나서 존재감을 키우다가 또 그 존재감을 조금씩 덜어가다가 생을 마감하는 것이 아니더냐. 죽고 나면 존재감은 한 줌 흙의 무게가 되는 것 아니더냐. 육체의 속박에서 벗어나면 영혼은 자유를 얻을 것이 아니더냐. 지금보다 멀리를 너무 멀리까지 내다보지 말고 지금만을 살자.

(2010년 11월 7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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