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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상파 Jan 15. 2024

어머니 말씀 02

어머니가 처음 센터에 가는 날

어머니를 집으로 모셔올 때는 낮에는 어르신 유치원인 주야간보호센터에 보내기로 형제들과 의논이 됐다. 하지만 시골집을 버려두고 딸네 집에 온 것만으로도 저리 기겁을 하시니 올라오시는 다음날 차마 센터에 보낼 수가 없었다. 여러 날을 집에서 함께 지내고 오늘에사 경험 삼아 보내보기로 했다. 아무도 모르는 낯선 곳에 보내놓고는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아서 첫날은 어머니와 걸어서 직접 센터로 갔다. 동행하는 딸에게 어머니는 수도 없이 어딜 가냐고 물으셨다가 시골집에 데려다 놓으라고 하셨다가 우리 집에 가만있으면 안 되냐고 하시며 애처롭게 굴으셨다. 그런 어머니를 상대하며 걷다보니 집에서 도보로 15분 거리를 30분만에 도착했다. 

센터에 들어서자 어머니는 내게서 떨어지지 않으시려고 딱 붙어 계셨다. 어디인지도 모르는 곳에다 당신을 버려두고 가버릴까 봐 겁을 먹으신 표정이었다.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어머니의 관심을 끌어보려고 이야기를 나누고 계시는 할머니들 곁으로 이끌어도 어머니는 나만 주시하며 선생님의 간섭을 달가워하지 않으셨다. 어머니와 그렇게 둘이 우두커니 서 있는데  소파에 앉아 있던 노인들 몇 분이 짧은 커트 머리를 하고 있는 내 성별을 갖고 내기를 한 모양이다. 내 면전에서 남자인지 여자인지를 직접 물어왔다. 워낙 다양한 어르신들이 모이는 장소이니만큼 그러려니 하는 마음으로 그분들에게 내 성별을 고지해야 했다.머리가 허옇게 센 할머니는 대놓고 내 외모까지 품평을 하신다. 너무 못생겼다나 어쩐다나. 너무 직설적이어서 할 말을 잃었다. 

어머니가 날 잡으실까봐 센터를 몰래 빠져나왔다. 그런데 어머니는 내가 가고 난 다음 계속 나를 기다리신 눈치였다. 5시 넘어 모시러 갔더니 나를 보자마자 당신에게 간다는 말도 없이 가버렸다고 눈을 흘기셨다. 어머니에게 센터에서 지내는 것이 어땠냐고 물었더니 이상한 데라고 내일은 절대로 안 올 거란다. 내일은 꼭 시골 내려갈 거라고 하신다. 센터 선생님은 어머니가 아주 재밌게 잘 지냈다고 하는데 어머니는 내게 딴말을 하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센터에 갈 때와 같이 어디 가냐고 물으셨지만 집에 간다는 말에 잠잠하셨다. 그러다가 무슨 정신이 났는지 내가 당신을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하는 것이 힘들어서 얼른 시골 내려가야겠다는 말씀을 하신다. 딸자식이 당신 때문에 고생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니 우리 어머니 아직 멀쩡하신 것 같다. 

치매, 옛날 말로 어머니는 노망이 나신 거다. 어머니가 조금 모자라게 구는 것이 그리 싫지는 않다. 어머니가 조금은 귀엽고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건강하실 때 어머니는 억척같이 일만 하시며 늘 일에 쫓겨 사셨다. 그러니 지금은 병을 핑계 삼아 도시의 자식집에서 사실 때도 됐다. 어머니가 편찮으시지 않았다면 돌아가시 직전까지 시골에서 땅을 파고 사셨을 것이다. 어머니에게 늘그막에 병이 찾아온 것은 일을 그만두고 쉬라는 뜻일 것이다. 생의 후반을 자식들 곁에서 보내라는 뜻일 것이다. 당신 한 몸 감당할 수 없는 정신이기는 하지만 그것도 인생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라는 뜻일 것이다.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인생이니 주어진 삶을 주어진 대로 살다가 사라질 일이다.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로 태어나서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사람의 일일 터이니. 어머니 역시 그 길을 가기 위해 기억을 비워가는 중일 것이다. 30년 후에 내가 살아있다면 어머니처럼 나도 이렇게 아이가 다 돼 묻고 또 묻고 떼를 쓰고 고집을 피우며 나를 잃어갈 것이다. 어머니를 통해 30년을 미리 앞당겨서 경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다. 어머니는 당신이 바보가 되어버린 것이 두렵다고 하는데 어머니의 나이를 살게 된다면 그때 나는 무엇이 두려울까. 더 이상 운신할 수 없는 순간까지 숨을 깔딱거리며 목숨을 이어가는 것이 아닐까. 그런 고통을 감내해야 육신을 벗을 수 있다면 기꺼이 감내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어쩌겠는가. 살아있는 목숨들의 운명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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