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돈나와 침실
이상화의 〈나의 침실로〉
마돈나와 침실
마돈나와 침실. 이 두 단어는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낯설게 하기 기법을 모르던 때는, 이 조합을 받아들이는 일 자체가 정서적으로 거부감에 가까웠다. 마돈나는 신성의 명칭이고, 침실은 은밀한 육체의 공간인데, 이상화는 이 둘을 하나의 문장 안에 과감히 끌어다 놓는다. 그래서인지 이 시를 읽을 때마다, 마돈나와 침실 그 중간지대, 서로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두 세계가 스치며 만들어내는 묘한 떨림에 사로잡히게 된다.
처음 이 시를 만났을 때의 감정을 지금도 비교적 또렷하게 기억한다. 애로틱하면서도 비의에 싸인 침실, 그 안을 마치 몰래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 은밀함을 누구에게도 드러낼 수 없어 혼자 가슴을 졸였다. 그 마음은 세월이 지나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학창 시절의 그 감정처럼, 이 시는 여전히 로맨틱하고 낭만적이다. 말해지지 않은 것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건네듯, 이 시는 끝내 알 수 없는 여지를 남긴다.
시적 화자가 마돈나에게 재촉하듯 함께 가자고 부르는 침실은 단순한 성적 공간으로 머무르지 않는다. 이 침실은 절박하고 중요한 일이 비밀리에 이루어져야 하는 장소처럼 느껴진다. 화자의 다급한 목소리—달려오너라, 빨리 가자, 빨리 오려무나—는 설렘이라기보다 기다릴 수 없는 사람의 호흡에 가깝다. 이미 도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알고 있는 사람이 내뱉는 부름처럼 들린다.
그럼에도 이 시는 육체의 그림자를 완전히 벗어나지는 않는다. 수밀도의 가슴, 어둠 속에서 숨는 두 별, 목을 안으라는 요청, 그리고 “사람이 안고 궁구는”이라는 구절들. 이러한 이미지들은 분명 육체를 호출하지만, 그 몸은 욕망 자체라기보다 조급한 운명의 서사에 더 가까워 보인다.
결정적 순간에 침실은 부활의 동굴, 그리고 “아름답고 오랜 거기”로 변모한다. 사랑의 방이 재탄생의 장소로 치환되는 이 급격한 전환에서, 이 시가 단순한 밀애의 노래가 아님을 느끼게 된다. 두 사람이 함께 도모해야만 하는 어떤 비밀스러운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렇기에 침실은 혼자서는 들어갈 수 없는 하나의 문처럼 여겨진다. 침실은 목적지라기보다, 그곳으로 향하기 위한 은밀한 통로에 가깝다.
마돈나는 단순한 연인이 아니다. 구체적인 인물이라기보다 화자가 만들어낸 이상적 형상이거나, 어떤 일을 함께 수행해야 하는 동지처럼 보인다. 사랑을 빙자해 서로에게 기대고 있지만, 두 사람은 개인적 밀회가 아니라 사랑보다 더 큰 어떤 일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듯하다. 그 일은 끝내 밝혀지지 않는다.
화자는 다급하게 불러대지만 마돈나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그들이 가고자 하는 침실은 “뉘우침과 두려움의 외나무다리 건너”에 놓여 있다. 이는 침실이 사랑의 방이 아니라, 신을 부르고도 응답받지 못한 인간이 스스로 건너가야 하는 외로운 선택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자는 “언젠들 안 갈 수 있으랴, 갈 테면, 우리가 가자, 끄을려가지 말고!”라고 말한다. 끌려가지 않겠다는 이 말 속에는, 욕망을 부정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그 욕망의 책임을 온전히 자기 몫으로 끌어안겠다는, 끝까지 스스로를 주체로 남기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그래서 이 시는 에로틱하지만 가볍지 않고, 은밀하지만 끝내 불안하다. 침실에 도착하는 순간,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세계로 들어섰다는 감각이 남는다. 화자의 부름은 한 번도 온전한 응답을 얻지 못하기에, 가장 선명하게 남는 것은 침실 앞에서 서성이는 사람의 마음이다. 도달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부르고, 부르는 동안 무너지는 자신을 붙들기 위해 더 다급하게 부르는 마음.
어둠 속에서 비밀리에, 그리고 끝내 응답하지 않은 마돈나를 향해 화자는 기다림에도 한계가 있음을 고한다. 첫닭이 울고 먼동이 트는 시간, 더는 지체할 수 없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듯 마돈나를 재촉한다. 어둠 속에서 숨을 수 있었던 유예는 끝나가고, 선택은 이제 은폐가 아니라 노출의 시간으로 넘어간다. 날이 밝는다는 것은 단지 밤이 끝난다는 뜻이 아니라, 숨겨두었던 욕망과 결정이 현실의 시간 속으로 끌려 나와야 함을 뜻한다. 첫닭의 울음과 함께 시작되는 이 새벽은 구원의 시간이 아니라, 결단이 더는 미뤄질 수 없다는 통보에 가깝다.
세월이 흘러 다시 이 시를 읽어도 풀리지 않는 것은 그대로 남고, 베일에 싸인 것들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이 시에서 멀어질 수가 없다. 밝혀지지 않기에 되레 선명해지고, 말해지지 않기에 되레 깊어진다. 나는 그 말해지지 않는 자리에서 여전히 첫 독서의 순간을 떠올리며, 침묵 속에 남겨진 채 시가 끝내 하지 않은 말을 오래 곱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