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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록 87

알 수 없어서 오래 남는 시

by 인상파

한용운의 〈알 수 없어요〉


알 수 없어서 오래 남는 시


한용운의 〈알 수 없어요〉는 삶에는 끝내 알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걸 알려준 시다. 시를 읽고 있으면 자꾸 의미와 이미지가 달아난다. 마치 눈앞을 무언가가 쓰윽 지나간 것 같은데,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는 끝내 잡히지 않는다. 시 속에는 오동잎이 있고 푸른 하늘이 있고 향기가 있고 시내와 저녁놀이 있지만, 그것들은 곧 누군가의 발자취가 되고 얼굴이 되고 입김이 되고 노래가 되고 시가 된다. 시구마다 독립적으로 놓여 있어, 하나의 이미지로 묶여지지도 않는다.


제목 그대로 알 수 없는 상태로 남는 시다. 이해되지 않은 채로, 설명되지 않은 채로, 감도 잡히지 않은 채로. 그것은 내 쪽의 실패일까. 아니, 이 시는 알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야 비로소 접근이 가능한 시인지도 모르겠다. 붙잡지 못했기 때문에 오래 기억에 남고, 이해하지 못해 미워졌기 때문에 쉽게 잊히지 않는다. 어쩌면 이 시는 앎을 묻는 시가 아니라, 알 수 없는 것을 앞에 두고도 얼마나 오래 머물 수 있는가를 묻는 시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시는 읽을수록 선명해지기보다 흐려진다. 이해하려고 할수록 멀어지고, 이미지를 그리려 할수록 사라진다. 마지막에 이르러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되고, 화자의 가슴이 약한 등불이 되지만, 그 등불이 밝히는 대상 역시 끝내 드러나지 않는다. 밝혀지는 것은 어떤 진실이 아니라, 밝혀질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 그 자체다. 그래서 〈알 수 없어요〉는 이해의 시가 아니라, 삶이 지닌 비의적인 영역을 끝내 지우지 않는 시로 남는다.


그럼에도 마지막 구절, 타다 남은 재가 기름이 된다는 말과 누군가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은 유독 강하게 마음을 건드린다. 노래나 시, 입김, 향기에 비해 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미지로서 유독 무겁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노래와 입김, 향기는 스치고 사라지는 기척에 가깝지만, 등불은 그 사라짐 이후에도 남아 밤을 견디며 남아 있는 것이다. 앞의 이미지들이 모두 순간적으로 감각되었다가 흩어지는 것들이라면, 등불은 그 흩어짐을 받아 안고 끝까지 타는 자리다.


결국 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이 노래나 시가 아니라 등불이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이 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끝내 알 수 없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도 포기하지 않고 견디는 일, 그것이 등불의 역할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 시는 노래로 끝나지 않고, 설명으로도 끝나지 않으며,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 하나를 남긴 채 멈춘다.


삶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순간들이 있고, 의미를 붙이려 하면 오히려 자신으로부터 멀어져가는 경험들이 있다. 시에서처럼 왜 하필 오동잎이 그 순간 떨어졌는지, 향기가 왜 그렇게 스쳤는지, 누군가의 얼굴과 입김처럼 느껴졌던 그 기척은 도대체 무엇이었는지가 끝내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들은 다만 지나가고, 마음에 남고, 어느 날 이유 없이 다시 타오른다. 그래서 이 시는 비밀을 풀어주는 시라기보다, 비밀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만드는 시에 가깝다. 끝내 알 수 없는 영역을 해명하지 못한 채로도 살아가며, 때로는 그 알 수 없음 덕분에 삶이 더 깊어질 수 있다는 것. 이 시는 그렇게, 끝내 알 수 없는 시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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