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록 93

서정주의 〈동천〉

by 인상파

서정주의 〈동천〉


닿지 않음에 대하여


서정주의 〈동천〉은 ‘겨울 하늘’이라는 제목만큼이나 서늘하게 느껴지는 시다. ‘내 마음속 우리 님’이라는 시구부터, 님이라는 존재가 현실에 현존하는 인물이 아니라는 인상을 준다. 님은 곁에 있거나 다가오는 존재가 아니라, 이미 마음속에만 자리한 대상이다. 그 존재의 눈썹은 씻겨지고 옮겨져 하늘에 심어진다. 그것은 인간의 시간과 공간 안에서 더 이상 상호작용하지 않는다.


겨울 하늘에 떠 있는 눈썹달과 님의 고운 눈썹 사이의 유사성은 분명 보이지만, 시상이 향하는 방향은 자연스러운 연상이나 감정의 확장에 있지 않다. 님의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라는 표현은 사랑의 깊이나 정성의 크기를 말하기보다, 그 연유가 이미 세속의 세계를 벗어나 있음을 암시한다. 즈믄 밤은 인간이 견딜 수 있는 시간의 단위가 아니며, 그만큼 이 사랑은 지상의 감정으로 다룰 수 없는 차원에 놓여 있다.


그래서 이 시의 사랑에는 온기가 없다. 다가가고 싶은 욕망보다는 거리를 유지하려는 태도가 먼저 느껴지고, 만남보다는 질서가 앞선다. 하늘에 옮겨 심어진 님의 눈썹은 인간의 것이 아니라 천상의 것이 되며, 동지섣달의 매서운 새조차 그것을 해치지 못한 채 비켜간다. 이 모든 과정은 사랑의 성취라기보다, 사랑이 인간의 세계에서 물러나는 장면처럼 보인다.


그 결과 〈동천〉은 사랑을 노래하면서도 인간의 온정을 남기지 않는다. 시는 아름답기보다 서늘하고, 이해되기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시로 남는다. 그것은 서늘해지는 반응이다. 님은 그저 저 높은 하늘에 두고 우러르는 존재다. 〈동천〉의 사랑은 호명이나 교감의 관계가 아니라, 거리 자체를 유지하려는 태도에 가깝다. 그래서 이 시에는 애틋함보다 객관적 거리감이 먼저 느껴진다.


시인의 다른 작품인 「화사」나 「문둥이」 역시 격렬한 감정을 토로하는 시라기보다, 감정이 개입하기 이전의 어떤 상태를 보여준다. 원숙미를 노래한다고 알려진 「국화 옆에서」조차 마찬가지다. 생명의 탄생을 경외로 그리면서도, 그 과정에는 인간의 손길을 넘어선 어떤 힘이 과도하게 개입한 듯한 긴장감이 흐른다. 그래서 독자는 공감하기보다 서늘해지고, 감정을 따라가기보다 그 장면 앞에 머물게 된다. 시는 감정의 서사가 아니라 주술적·운명적 상태에 가깝다.


그의 시에서 자연은 자연스럽지 않다. 자연은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초월적인 힘이 깃든 장소이며 언어를 통해 호출되거나 조작되는 존재처럼 보인다. 그래서 서정주의 시에는 온기보다 서늘함이, 공감보다 거리감이 먼저 남는다. 〈동천〉의 겨울 하늘 역시 그러하다. 님은 사랑의 대상이기 이전에, 인간이 감히 닿을 수 없는 차원의 존재로 놓이고, 화자는 그 존재를 가까이 끌어오지 않은 채 하늘에 두고 바라본다.


이처럼 서정주의 시가 자연과 사랑을 노래하면서도 독자를 감동으로 이끌지 않는 이유는, 그의 시가 인간의 세계를 넘어선 힘과 질서를 끝내 내려놓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시를 읽고 나면 감정이 풀리기보다, 오히려 어디에도 흘러가지 못한 채 고여 있다.


그래서 〈동천〉을 읽고 나면 어떤 깨달음이 오는 것도 아니고, 감동이 밀려오는 것도 아니다. 시와 독자 사이에는 마치 보이지 않는 존재가 하나 개입해 있는 듯한 느낌이 남는다. 그 존재는 시의 의미를 설명해 주지도, 감정을 전달해 주지도 않는다. 다만 거리를 만들고 쉽게 닿지 못하게 한다. 독자는 시와 마주해 있지만, 동시에 한 발 물러서 있는 상태에 놓인다.


사랑은 감정으로 교환되지 않고, 자연은 공감의 대상으로 열리지 않는다. 모든 것은 이미 다른 세계의 질서 속에 놓여 있고, 독자는 그 질서를 바라볼 뿐이다. 그래서 〈동천〉은 이해되기보다 감지되고, 감동되기보다 서늘하게 남는다. 시와 독자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무지나 해석의 부족이 아니라, 이 시가 끝내 인간의 세계로 내려오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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