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록 106

우리의 평온은 무엇의 대가인가

by 인상파

클레어 키건, 『이처럼 사소한 것들』(다산책방)


우리의 평온은 무엇의 대가인가


누구나 평온한 일상을 스스로 깨뜨리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하루를 무사히 넘기고, 가족을 먹여 살리며, 자기 몫의 책임을 다하는 삶은 그 자체로 충분히 버겁다. 그래서 우리는 대개 다른 사람의 일에까지 눈을 돌릴 여유를 내지 않는다. 애써 굴러가고 있는 일상이 멈출까 두려워, 불편한 진실 앞에서 고개를 돌린다. 그렇게 지켜낸 평온이 어떤 대가 위에 놓여 있는지 어렴풋이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쪽을 선택하며 살아간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바로 그런 우리의 무관심을 조용히 건드린다. 소설의 주인공 펄롱은 다섯 딸을 둔 아버지이자 땔감 배달소를 운영하는 평범한 가장이다. 그는 자신의 삶을 돌아볼 여유조차 허락하지 않은 채 하루하루를 빈틈없이 살아간다. 사회적으로 어려운 시기이기는 하지만, 그럴수록 그는 버티는 쪽을 택한다. 조용히 엎드려 지내며 사람들과 척지지 않고, 딸들을 뒷바라지하며 지금의 삶을 유지하겠다는 결심을 반복한다.


그러나 이 흔들림 없이 지속될 것 같은 일상은 소설 초반부터 미묘한 균열을 드러낸다. 시간을 한 시간 되돌리는 설정, 10월에서 11월로 넘어가는 계절의 변화, 굴뚝의 연기가 가라앉고 흑맥주처럼 검게 흐르는 강물의 묘사는 이 평온이 결코 단단하지 않다는 신호처럼 읽힌다. 무언가가 이미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소설은 설명하지 않고 암시한다.


펄롱은 자신이 목도한 수녀원 안의 현실을 모른 척하고 돌아설 수도 있었다. 그렇게 했다면 그의 일상은 그대로 유지되었을 것이다. 딸들은 원하는 수녀원 학교에 갈 수 있었고, 생계는 그럭저럭 이어졌으며, 마을 사람들의 지탄을 받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수녀원의 아이를 외면하는 선택은 그에게 또 다른 삶을 요구했을 것이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면서 살아가는 삶, 할 수 있었던 일을 외면했다는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삶이다.


펄롱이 끝내 세라의 손을 잡는 순간, 그는 평온한 일상을 잃는 대신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다. 그의 선택은 용기라기보다,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겠다는 결단에 가깝다. 이 소설이 말하는 윤리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옳은 일을 하면 대가를 치러야 하는 현실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르지 않으면 더 큰 대가를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하는 순간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 소설을 덮고 난 뒤에도 질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평온은 과연 온당한 것인가. 그 평온은 누군가의 희생과 폭력을 묵인한 채 유지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만약 선택의 순간이 온다면, 나는 어떤 짐을 짊어질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 작품이 제목과 달리 사소하지 않고 묵직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 질문이 결국 우리의 삶으로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펄롱이 그런 선택을 하게 된 데에는 그의 태생과 성장이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그는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나 사회의 가장자리로 밀려날 수도 있었던 존재였다. 그러나 미시즈 윌슨이라는 한 사람의 선택 덕분에 그는 수녀원이나 시설이 아닌, 보통 사람의 일상 안에서 자랄 수 있었다. 그것은 대단한 용기를 요구하는 일이 아니었다. 한 아이를 사람으로 대우하겠다는 태도, 사람에 대한 호의에 가까운 선택이었다. 그 덕분에 펄롱은 ‘정상적인 삶’의 안쪽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그래서 수녀원에서 만난 세라는 펄롱에게 단순한 동정의 대상이 아니다. 그녀는 다른 경로로 흘러갔을 수도 있었던 자기 자신의 모습이다. 만약 미시즈 윌슨이 없었다면, 자신 역시 세라처럼 종교와 제도의 이름 아래 ‘보호’라는 말로 포장된 폭력 속에 놓이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질문이 그를 붙든다. 펄롱의 고민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고, 마침내 행동으로 옮겨진다. 그는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삶이 어떤 선택 위에 가능했는지를 끝내 외면하지 않으려는 사람이다.


결국 펄롱의 행동은 용기라기보다 기억의 윤리다. 자신을 지금의 자리로 이끈 ‘사소한 친절’을 부정하지 않기 위해, 그는 또 다른 ‘사소한’ 선택을 감행한다. 이 소설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거대한 정의가 아니라, 자기 삶의 기원을 외면하지 않으려는 마음일지도 모른다고.


소설을 닫으며 독자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펄롱일까?, 아니면 아일린이나 미시즈 케호에 더 가까운 사람일까? 평온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고, ‘내 아이가 아니다’, ‘내가 감당할 일이 아니다’라는 말로 선을 긋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질문 앞에서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는 이유는, 아일린과 케호의 선택을 비겁하다고 단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삶의 방식은 우리가 매일같이 선택하는 현실적인 태도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소설은 독자를 안심시키지 않는다. 펄롱의 선택을 이상적인 윤리로 제시하지도, 아일린의 태도를 단죄하지도 않는다. 다만 우리가 지키고 있는 평온이 무엇을 대가로 유지되고 있는지, 그리고 그 대가를 끝내 짊어지지 않기로 선택했을 때 어떤 마음의 빚을 안고 살아가게 되는지를 보여줄 뿐이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그렇게 독자를 판단의 자리로 데려다 놓고 물러난다. 선택은 끝내 각자의 몫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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