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록 113

풍경으로 남은 비문

by 인상파

함형수의 <해바라기의 碑銘>

청년화가 L을 위하여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거운 碑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1936년, 시인부락)



풍경으로 남은 비문


무덤이 강렬한 생명력을 품고 있는 풍경화로 기억되는 시는 함형수의 〈해바라기의 碑銘〉이다. ‘해바라기의 비명’이라면 해바라기를 비석 삼아 남기는 글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다. 비명이라 하면 으레 차가운 돌 위에 새겨진 이름과 연대, 떠난 이가 끝내 다 하지 못한 말들이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함형수의 〈해바라기의 碑銘〉에서 비명은 죽음을 고정하는 언어가 아니라, 죽음 이후에도 계속 살아 움직이기를 바라는 선언처럼 느껴진다.


이 시에서 무덤은 침잠의 공간이 아니라 시선이 열리는 자리다. 비석 대신 해바라기가 서고, 그 사이로 보리밭이 일렁이며, 하늘을 찌르듯 날아오르는 노고지리가 있다. 여기에는 정지된 추모도, 엄숙한 침묵도 없다. 대신 빛과 색, 바람과 비상 같은 강렬한 생명성의 요소들이 화면처럼 배치된다. 그래서 이 비명은 읽히는 글이 아니라, 한 폭의 풍경화처럼 기억된다. 비문이 유난히 밝고 생기롭게 느껴지는 이유다.


이런 이유로 이 시를 읽다 보면, 임형주가 세월호 추모곡으로 불렀던 ‘천 개의 바람이 되어’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나는 바람이 되어 당신 곁에 머물겠다’는 그 노랫말처럼, 이 시에서도 죽음은 사라짐이 아니라 형태를 바꾼 동행으로 남는다. 이름으로 새겨지기보다 바람으로 스치고, 돌로 고정되기보다 빛과 노래로 반복되는 기억이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이 풍경이 산 자를 위한 위로에 앞서 무덤의 주인이 보고 싶어한 세계라는 점이다. 화자는 죽음 이후에도 여전히 사랑과 꿈을 ‘본다’. 해바라기를 자신의 화려했던 사랑으로, 보리밭 위를 나는 노고지리를 아직 날아오르는 꿈으로 여겨 달라는 주문은, 죽음을 끝으로 삼지 않겠다는 고집이자 삶을 진행형으로 남기려는 태도다.


그래서 이 시의 무덤은 죽음을 가두는 장소가 아니라, 의미가 머무는 자리가 된다. 비통함도 애도의 과잉도 없이, 햇빛을 머금은 노랑과 푸름, 바람과 비상의 움직임이 그 자리를 채운다. 무덤이 ‘끝’이 아니라 하나의 풍경이 되는 순간이다.


특히 부제의 ‘청년 화가 L’이 끝내 밝혀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궁금증을 낳는다. 시 속에 펼쳐진 화풍으로 보아 빈센트 반 고흐를 떠올리게 되지만, 그 진위를 확인할 길은 없다. 어쩌면 ‘청년 화가 L’은 특정한 한 사람이 아니라, 기억되는 방식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이 시는 “그는 누구였는가”를 묻지 않고, “그는 어떻게 남고 싶은가”를 묻는다. 그리하여 비석은 연대기적 설명이 아니라, 눈으로 바라보는 생동하는 풍경으로 남는다. 돌이 아니라 바람과 빛으로 기억되는 것이다.


결국 〈해바라기의 碑銘〉이 보여주는 것은, 죽은 이를 붙잡아 두려는 애도가 아니라 살아 있는 세계 속으로 흩뿌려 보내는 추모의 방식이다. 그래서 이 무덤은 어둡지 않고, 이 비명은 울부짖지 않는다. 대신 풍경으로 남아, 보는 이의 눈과 마음속에 오래도록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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