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알고 있던 울음을 다시 듣는 자리
서정주의 「귀촉도」
눈물 아롱 아롱
피리 불고 가닌 님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 삼만리.
흰 옷깃 여며 여며 가옵신 님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 삼만리.
신이나 삼어줄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메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
부질없는 이 머리털 엮어 드릴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
굽이 굽이 은하물 목이 젖은 새
차마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을로 가신 님아.
육날메투리는 신 중에서는 으뜸인 미투리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조선의 신발이었느니라. 귀촉도는, 항용 우리들이 두견이라고도 하고 소쩍새라고도 하고 접동새라고도 하고 자규라고도 하는 새가, 귀촉도…… 귀촉도……그런 발음으로써 우는 것이라고 지하에 돌아간 우리들의 조상의 때부터 들어온 데서 생긴 말씀이니라. <1943, 춘추>
이미 알고 있던 울음을 다시 듣는 자리
봄이면 소쩍새 울음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내게 그 울음은 언제나 “소쩍다, 소쩍다”로 들렸다.아버지가 소쩍새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 뒤부터였다. 옛날에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구박해 밥을 주지 않으려 아주 작은 솥을 내주었고, 결국 며느리는 굶어 죽었다. 그 영혼이 새가 되어“솥이 적다, 솥이 적다” 그렇게 운다는 이야기였다. 소쩍새의 울음은 그 이야기와 함께 내 귀에 남았다.
그런데 그 소쩍새가 서정주의 시에서는 ‘귀촉도’로 나온다. 귀촉도, 귀촉도 하고 울어서란다. 같은 새의 울음을 사람마다 다르게 듣는 이유는 사람이 각자의 상실과 기억으로 소리를 듣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소쩍새의 울음은 자연의 소리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이야기 저장고다. 누군가는 그 소리에서 굶주림을 듣고, 누군가는 망국을 듣고, 누군가는 이별을 듣는다.
‘귀촉(歸蜀)’은 촉나라로 돌아가고 싶다는 뜻이다. 중국 고사에서 나라를 잃은 촉나라 임금은죽은 뒤 두견새가 되어 밤마다 귀촉, 귀촉 울었다고 한다. 나라는 사라졌고, 몸은 죽었고, 남은 것은 울음뿐이다. 귀촉은 그렇게 귀향 불가능성의 소리로 전해진다.
서정주의 「귀촉도」는 바로 이 오래된 울음 위에서 시작한다. 그래서 이 시의 정서는 처음부터 개인의 사연에만 머물지 않는다. 시 속의 님은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 삼만리”로 떠난다. 파촉은 더 이상 현실의 지명이 아니라, 저쪽 세계의 이름이다. 이 지점에서 「귀촉도」는 사랑의 시가 아니라 보냄의 시, 더 정확히는 돌아올 수 없음을 아는 이별의 시가 된다.
첫 연은 사람의 마지막을 시적으로 절묘하게 붙잡는다.
“눈물 아롱 아롱”이라는 말 앞에서 누가 울고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상여를 뒤따르며 우는 남은 자의 눈물일 수도 있고, 피리 불고 떠나는 님의 마지막 눈물일 수도 있다. 떠나는 자와 남는 자의 경계가 아직 완전히 갈라지지 않은 순간, 죽음의 문턱에서 두 존재의 감정이 한 장면 안에 섞여 있다. 피리는 말도 울음도 아닌 소리로 길을 연다. 그것은 곡성 이전의 소리이자, 이미 받아들인 떠남의 소리다. 그래서 슬픔은 떠나는 자보다 남은 자에게 더 오래 남는다.
둘째 연에 이르면 시의 시선은 분명히 돌아선다.
“삼어줄걸”, “엮어 드릴걸”이라는 말은 모두 지나간 시간을 향해 있다. 이 연의 정서는 슬픔보다 회한과 죄책감에 가깝다. 더 잘 보내주지 못한 것, 가는 그 길까지 정성을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 이때 화자는 님을 잃은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된다. 사랑의 실패가 아니라 마지막을 잘 보내지 못한 데서 오는 아픔이 시의 중심으로 이동한다.
셋째 연에서 세계는 다시 변형된다.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은 장례의 밤이다. 사람이 죽으면 문 앞에 켜 두는 초롱, 죽음이 이 집에 있음을 알리는 불빛 아래에서 하늘조차 지쳐 있다. 그때 등장하는 존재가 바로 귀촉도다. “굽이굽이 은하물 목이 젖은 새.” 은하물은 저승과 이승의 경계이고, 목이 젖었다는 것은 죽음이 차올랐다는 뜻이다. 완전히 건너간 것도, 온전히 돌아온 것도 아닌 상태. 그래서 이 존재는 사람이 아니라 새다. 인간의 언어가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하는 감정이 울음의 형상으로 남은 것이다.
이렇게 「귀촉도」는 여러 층으로 겹쳐 있다. 장례의 현실 위에 개인의 회한이 놓이고, 그 위에 중국 고사의 망국의 한이 겹쳐지며, 끝내는 존재의 변형까지 이른다. 그래서 이 시의 울음은 특정한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반복되어 온 인간의 울음처럼 들린다. 누구나 언젠가는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또 누구나 언젠가는 돌아갈 수 없는 쪽으로 떠난다. 떠난 사람 역시 한때는 잊지 못할 이를 먼저 떠나보냈을 것이다.
서정주가 「귀촉도」의 말미에 덧붙여 놓은 설명에 따르면, 귀촉도는 “귀촉도…… 귀촉도……” 그런 발음으로써 우는 것이며, “지하에 돌아간 우리들의 조상의 때부터 들어온 데서 생긴 말”이라고 전하고 있다. 이 말에는 우리의 정서에 이미 오래전부터 스며들어 있던 슬픔의 기억이 담겨 있다.
귀촉도는 특정한 고사 지식이나 문헌적 이해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보다 앞서, 밤에 들려오던 울음, 누군가를 떠나보낸 뒤 말보다 먼저 귀에 남았던 소리를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이 시의 울음은 새롭게 배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던 감각을 다시 불러내는 방식으로 다가온다. 귀촉도의 울음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그것이 한 개인의 비극에서 비롯된 소리가 아니라, 조상 대대로 반복되어 온 상실의 순간마다 귀에 새겨져 온 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귀촉도」는 읽고 해석하는 시라기보다,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울음을 다시 듣는 자리로 우리를 이끈다. 그 자리에 서면, 우리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고개를 끄덕이며, 이 소리를 예전에 어디선가 이미 들어본 적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