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떡 같은 날
개떡 같은 날
일을 하다 흥분한 목소리로 나를 흉보며,
사람이 못 써졌다느니 다른 요양보호사를 구해 달라느니 하는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앞치마를 벗어 던졌다.
더는 그 자리에 있고 싶지 않았다.
사람을 바로 앞에 두고, 없는 사람 취급하며 말을 쏟아내는 목소리를
더는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날은, 말 그대로 개떡 같은 날이었다.
나는 요양보호사로 한 노인의 집에 다니고 있었다.
주 2회, 하루 3시간.
서류 위의 시간은 가벼웠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노인은 일주일 중 나흘을 주야간보호센터에서 보내고 있었고,
내가 가는 이틀 동안 사실상 닷새치 집안일을 몰아서 해야 했다.
마트로, 병원으로, 동사무소로 돌아다니며 장을 보고
그걸로 반찬을 만들고 김치를 담그고 집을 치우고 화분을 닦았다.
장애인 콜택시를 불러
백 킬로에 가까운 몸을 휠체어에 실어 옮기는 일도 버거웠다.
세 시간 안에 끝날 수 없는 일들을
늘 세 시간 안에 끝내야 했다.
힘들었지만 참고 했다.
일이 감당 못 할 만큼 어려워서가 아니라,
참고 넘기는 자리에 익숙했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온 시간 동안
나는 늘 그랬다.
누군가의 사정이 먼저였고
내 몸과 시간은 늘 나중이었다.
그래서 이 일도 그냥 그렇게 하면 되는 일이라고 여겼다.
불쌍한 노인네라 못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노인은 늘 성이 나 있었다.
아들과 딸이 생활비를 주지 않는다고,
같이 사는 손녀가 알바를 하면서도
박카스 한 병 할머니 먹으라고 사 오지 않는다고,
동네 할머니들이 돈 없는 자신을 무시한다고,
센터 직원이 도시락 반찬을 싸가는 자신에게
그만 가져오라고 싫은 소리를 했다고,
수영장에서 배 나왔다고 놀림을 받았다고.
불만은 늘 넘쳤고,
세상은 늘 자신에게 불공평했다.
문제는 아주 사소한 데서 터졌다.
노인이 직접 만든 개떡을 내게 먹으라고 했다.
배가 불렀고, 곧바로 이를 닦을 수 없는 상황이라 사양했다.
그 순간 노인의 표정이 달라졌다.
마침 복지사가 와 있던 자리였다.
노인은 예전 요양보호사 이야기를 꺼냈다.
자가용이 있어 새벽에도 와 주었고
필요한 일을 다 해 주었다는 말이었다.
나는 예전 같지 않고, 변했고,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실은 이 집을 한 번 그만두었다가
일을 많이 하고 싶지 않아
주 2회를 택해 다시 들어간 집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사람이 못 써진 요양보호사가 되어 있었다.
그 말은 일을 자르는 말이 아니었다.
사람을 자르는 말이었다.
현미를 불려 놓았으니
새벽 일곱 시까지 집으로 와 달라는 요구를 했을 때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걸 알면서도
그런 부탁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걸 보며
이미 사람의 염치를 기대하긴 틀렸다고 느꼈다.
나는 두 시에서 다섯 시에 일하는 사람이었고
어머니를 희생하면서까지
이 노인을 도울 마음은 없었다.
손녀도 집에서는 먹지 않는다는
가래떡을 십 킬로나
쑥을 넣어 뽑아내는 집착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결국 노인은 다른 노인을 불러
장애인 콜택시를 타고 떡집에 다녀왔고,
그 일로 다른 노인이 허리가 아프다고
앓은 소리를 하고 있어
한 달이 지났는데도 그 이야기를 꺼내며
복지사 앞에서 나를 깎아내리고 있었다.
나는 그 집에서 늘 마스크를 쓰고 일했다.
노인은 천식이 심해
먹을 때마다 가래를 뱉어냈고
기침을 달고 살았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노인은 독하게 감기를 앓았고
나 역시 오래 앓았다.
그런데 어느 날,
노인은 자기 감기가 나아가자
내 기침을 보고
내가 자기에게 감기를 옮겼다고 말했다.
그 이후로 나는 그 집에서
되도록 먹지 않았고
무엇을 권해도 사양했다.
먹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그런 말을 더는 감당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
개떡 하나를 먹지 않았다는 이유로
나는 ‘사람이 변한’ 요양보호사가 되었다.
예전 사람과 비교되었고
쓸모를 따져 평가받았다.
자기가 부르면 언제든 와야 하고
자기 필요에 따라 쓸 수 없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이때다 싶었다.
그만둘 때를 재고는 있었지만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내가 맡은 일을 하지 않았느냐고,
음식을 먹지 않는다고
사람 앞에 두고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그 말까지만 하고
나는 그 집을 나와버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분했고, 억울했고, 허탈했다.
내가 왜 이러고 사는 걸까.
쉰을 훌쩍 넘긴 나이에
이런 일을 하게 될 줄도,
일주일에 두 번 세 시간을 위해
이렇게까지 무너질 줄도 몰랐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자
다른 감정이 올라왔다.
그날의 선택은
일을 그만둔 선택이 아니라
더 이상 사람 대접받지 못하는 자리에서
노동을 팔지 않겠다는 선택이었다.
갈 곳 없고 마음 둘 곳 없는 노인이 불쌍하다는 이유로
내 마음과 노동을 내주어도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약자를 배려하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
자신의 이익만을 고집하며
타인의 시간과 몸을 당연하게 쓰는 사람.
그 자리는 돌봄이 아니라 지배가 된다.
개떡 같은 날이었다.
노인의 요구가 전혀 낯선 것은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더 많은 것을 잃고
그 상실 앞에서 타인에게 기댄다.
그 기대는 부탁이 되고
부탁은 요구가 되고
요구는 당연함이 된다.
그 사이에서
사람과 사람의 사정은 계속 어긋난다.
나는 그날 앞치마를 벗고 나왔다.
옳고 그름을 가릴 힘도,
설명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자리는 오래 머무를수록 더 흐려지고
어떤 관계는
물러서는 쪽이 덜 다치는 길이 되기도 한다.
돌봄이라는 말에는
늘 두 사람의 시간이 겹쳐 있다.
그리고 그 균형은
생각보다 훨씬 쉽게 무너진다.
앞치마를 벗어 던진 뒤
나는 누군가를 돕는 자리에 설 때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 사람인지
오래 생각하게 되었다.
그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은 채
내 안에 남아 있다.
아마도,
나는 앞으로
개떡을 다시는 먹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