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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상파 Jan 18. 2024

어머니 말씀 03

나 혼자만 달랑 남아

오후 6시 30분에 초등학생 독서 수업이 끝나는 날이다. 그 시간쯤이면 어머니가 센터에서 돌아오신다. 아무래도 시간이 겹칠 것 같아 센터에다 어머니를 평소보다 조금 늦게 모셔다 달라고 부탁을 했다. 학생들을 보내놓고 어머니를 기다리는데 7시 30분경에 모셔왔다. 너무 늦게 모셔왔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는 나를 보시자마자 울분에 찬 목소리로 속엣말을 거침없이  쏟아내셨다. 


세상에 데려다 놓고는 데리러오지도 않으면 어떻게 찾아오냐? 아주 징역살이를 시켜라 시켜. 기다리다가 몸살이 다 났다. 당장 시골에 데려다 놓아라. 이년아!


예상치 못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지 않아도 아침이면 센터에 가시지 않겠다고 어린아이처럼 고집을 부리시는 양반이다. 그런 양반을 다들 집에 가고 없는데 혼자 남겼으니 얼마나 속이 탔을까. 시골처럼 아는 데도 아니고 아는 사람도 없는 데서 이제나저제나 딸자식을 기다렸을 어머니를 생각하니 마음이 짠해졌다. 마치 유치원에서 친구들은 다들 엄마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오지 않은 엄마를 혼자 기다리는 아이처럼 여겨졌다. 가끔 어머니는 당신을 아무데나 버리지 말라는 뼈있는 말씀을 하시곤 하는데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 싶다.

사람을 만나자마자 당신의 감정을 퍼부어대니 할 말을 잃었다.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미 감정이 격앙돼 있어 무슨 말을 해도 어머니 귀에 들어가지 않을 성 싶었다. 아이들 가르치느라고 그랬다고 해봐도 먹히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미안한 마음에 안방으로 향하는 어머니 뒤를 졸래졸래 따라들어가다가  어머니에게 얼굴을 바짝 들이밀며 억울하다는 듯 큰소리로 물었다.


어머니 무슨 일 있었어요? 왜 그렇게 화가 났어요? 말씀해 보세요.


썩을 년이 아무도 모르는 데 데려다 놓을 때는 언제고, 염병을 다 하네.


하신다. 어머니 입에서 튀어나온 이 정도의 욕설은 충분히 애교로 봐  넘길 수 있다. 하지만 '썩을'이 '씹할'이 되면 듣는 쪽에서도 정말 참기 힘들다. 후자의 욕은 정말 모욕적이다. 기분이 잡쳐 어머니에게 차갑게 굴게 된다. 어머니가 후자를 입에 올리실 때는 어머니도 잔뜩 독이 올랐다는 뜻이다. 그럴 때는 거리를 둔다. 집에 돌아왔다는 안도감 때문일까. 어머니의 음성이 부드러워졌고 옆에서 딸이 지껄여대니 귀찮은 모양이다. 말 시키지 말고 당신을 가만 놔두라고 하신다.

오늘은 어머니에게 정말 긴 하루였을 것이다. 시골에서 이곳으로 오신 이후 바깥에 그렇게 장시간 계셔보기는 처음 있는 일이다. 더욱이 가고 싶지 않은 곳에 남아 있어야했으니 어머니 말씀대로 징역살이가 아니었을까. 정신도 온전치 못한 양반에게는 더욱더. 아무리 놀고 먹는 곳이라 해도 그 연세의 어머니에게는 고욕이었지 싶다. 

어쨌든 어머니는 지껄여대는 딸을 내쫓지 못했다. 당신 옆에 딱붙은 딸이 옆구리를 간지럽히자 그런 딸 때문에 생각났다는 듯 아주 뜬금없는 소리를 하신다. 당신이 왜 여기 와 있느냐는 것이다. 


아, 어머니가 아주 멍청해져서 여기 와 있지요! 밥도 못하고 빨래도 못하고 약도 못 챙겨드시고 읍내도 못 나가시고 그래서 딸 집으로 올라오셨지요.


나는 장난기가 발동해서 일일이 손가락을 꼽으며 그렇게 어머니를 놀리고 말았다. 그것은 진담이기도 했다. 어머니 병의 특징은 생각에 연속성이 없고 단편적으로 일어나는 생각을 불쑥불쑥 내뱉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감정도 들쑥날쑥이다. 한밤중에 먹을 것을 찾으실까봐 간단하게 드시게 하고 자리를 펴드렸더니 벽쪽으로 돌아누워버리신다. 코 훌쩍이는 소리가 나는 것을 보니 우시는 것 같았다. 왜 그러시냐고 물어도 대답을 안 하시고 귀찮다고 말 걸지 말라고 핀잔을 주신다. 그러시더니 뭔가를 다 알고 있다는 듯


내가 왜 이런 병에 걸렸다냐? 왜 이렇게 아무 생각이 안 난다냐? 내가 살던 동네가 어디냐? 그곳이 어떻게 생겼다냐? 거기 가면 나 혼자 못 사냐?


하고 두서없이 물으셨다. 기운은 없어보였지만 아픈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질문들을 던지셔서 나는 붕 떴다. 가끔 어머니에게 총기가 찾아드는 날이 있는데 오늘이 그런 날인가 보다. 혼자 달랑 남아 있다가 오셔서 울적한 기분이 오래간 것일까. 어머니의 기분을 전환시켜 보려고 형제들에게 돌아가며 페이스 톡을 눌렀다. 어머니의 얼굴이 활짝 폈다. 욕을 섞어가며  반기신다. 자식들에게 서운해하신다. 당신이 여기 와 있는데 아무도 보러 오지 않는다고. 당신 내일 시골집에 내려갈 터인데 이젠 보지도 못하게 생겼다고. 자식들 얼굴을 본 어머니는 달랑 혼자 남았던 기억은 벌써 잊으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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