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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상파 Jan 19. 2024

어머니 말씀 04

어머니를 누가 모실 것인가

어머니가 치매 진단을 받고 나자 형제들 중 누군가는 어머니를 모셔야 했다. 하지만 시집와서 60년 가까이 살아온 고향을 떠나신다는 것은 어머니에게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처럼 보였다. 곧 죽어도 시골은 절대 떠날 수 없다며 완강하게 거절하셨다. 차라리 어머니가 그런 뜻을 내비쳐주시니 마음은 편했다. 도시로 올라오신다고 해도 형제들끼리 그 뒷감당 수습이 쉬운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치매 환자에게 가장 좋은 환경은 환자가 살아온 낯익은 장소라는 말이 있다. 살아왔던 곳이 제일이라는 것이다. 그 말에 따라 그래도 어머니가 계실 곳은 사시던 고향마을이라는 생각을 했다. 서울과 인천에 살고 있는 형제들이 주말마다 돌아가며 당번을 정해 전라도 고흥에 계신 어머니를 돌보기는 했지만 그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 집으로 방문 요양보호사를 들여 어머니의 식사와 병원과 약을 챙겨주는 일을 맡겼다. 사람이 옆에 있을 때는 안심이 되었지만 그분이 가고 나면 낮인지 밤인지를 몰라 물어오는 전화가 자주 걸려왔다. 어느 시점부터는 전화가 걸려오는 횟수가 현저히 줄더니 이후에는 그조차 걸려오지 않았다. 전화 거는 것을 잊어버리신 것이다. 어머니의 상태는 날이 갈수록 악화되었다.

결국 남동생이 어머니를 모시고 왔다. 형제들끼리 어떤 합의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형제가 여섯이니 일 년 열두 달 한 형제가 2달씩만 모시면 되겠다는 계산은 되었다. 시골에 어머니 혼자 둘 수 없으니 그렇게라도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몸이 성치 않은 어머니를 이 집 저 집 돌아다니시게 하는 것도 못할 짓이었고 두 달이라고 하지만 직장이 있는 형제들에게는 그것도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결국 누구네 집에서 어머니를 모실 것인가가 문제가 되었다. 열 자식 한 부모가 키워도 한 부모 열자식이 못 모신다는 말이 결코 틀리지 않았다. 모두들 먹고 살기 위해 직장에 얽매여 있는 사정 때문이었다. 

형제들 중 시간이 가장 자유로운 사람은 나였다. 집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어 시간과 장소에 얽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형제들보다 어머니를 모실 수 있는 여건이 좋았던 것이다. 하지만 자유로운 몸이라 해도 선뜻 어머니를 모시겠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어머니를 모실 수 없는 핑계거리는 있었다. 아픈 어머니를 모시며 마음이 아픈 딸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기분장애가 있는 딸아이와 치매가 있는 어머니를 함께 감당한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버거웠다. 나 역시 정신줄이 튼튼하지 못했다. 감정 기복이 심한 편이었다. 삼박자가 어긋날 때 내가 어떤 상황으로 내몰릴 지 눈에 훤히 보였다. 될 수 있으면 어머니를 모시는 일을 피하고 싶었다. 소란스러운 내 삶에 어머니까지 끼어들어 어떤 소용돌이를 만든다면, 생각만으로도 아찔했다. 정말 환장할 일이었다. 

그러니 어머니 모시는 일을 형제들이 알아서 감당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내 스스로에게 물었다. 왜 나는 안 되면서 형제들이어야 하는가. 이기적이고 편하게 살려는 심보를 접기로 했다. 얼마를 사실지도 모를 일이다. 치매가 오래간다고 하지만 아직 거동을 하시고 세상일을 조금은 기억하시고 자식들을 알아보시니 함께 생활해도 나쁠 게 없지 않은가. 거동을 못하시고 누워계시면서 똥오줌을 가리지 못하시면 그때는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지금은 함께 살만하지 않은가. 

중학교 졸업 후 고향을 떠나 살면서 때가 되면 고향을 찾았지만 어머니와 그리 오랜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시골 가서는 하루 이틀 머물다 떠나 오기 일쑤였고 어머니는 어머니 나름대로 아버지 돌보시고 농삿일 하느라 바쁘셔서 도시의 자식들 집에 오래 머물지 못하셨다. 그런데 이제 늙고 병들어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돼 자식들에게 몸을 의탁하실 수밖에 없게 되었는데 자식들은 사정이 있다고 마다하고 있다. 서로 눈치만 살피고 있다. 내가 그랬듯 형제들도 누군가 나서서 어머니를 알아서 모셔주길 바랄 것이다. 형제들은 안 되도 나는 된다라는 생각으로 바꿔보았다. 

이유 없는 무덤 없듯이 모든 일에는 다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가 어머니와 함께 살아야 하는 이유도 분명 있을 것이고 형제들이 어머니를 못 모시는 이유도 분명 있을 터다. 잇속을 따지며 핑계거리를 만들어 내가 감당할 일을 피하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병든 어머니와 함께 지내는 일이 머릿속에서 상상하는 것보다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상상과 실제는 엄연한 차이가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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