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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상파 Jan 17. 2024

간병일기 10

서울나들이

연 이틀 병원 다니느라 바쁜 날들이다. 잠도 잘 못자고 먹는 것도 시원찮아서인지 남편에게 서울나들이는 고된 훈련과 다를 바 없었다. 앉아가는 버스에서는 괜찮았으나 전철에서는 자리가 없어 서서 가는 내내  몹시 힘겨워했다. 결혼하고 여태 자가용없이 살아왔지만 아픈 남편을 데리고 병원을 다닐 때는 정말 절실하게 자가용의 필요성을 느낀다. 용케 잘 다녀왔지만 앞으로가 더 문제일 것 같다.

어제는 방사선 종양학과 김일한 교수와 신경외과 김동규 교수의 진료가 있었다. 김일한 교수는 과거와 최근의 MRI 사진을 비교해가며 상태가 많이 나빠진 것을 짚어주었다. 하지만 희끄무레한 뇌 사진만으로 그것이 어느 정도의 악화인지는 실감할 수 없었다. 신경외과 교수는 MRI 사진을 들여다보더니 나만 남기고 남편을 진료실 밖으로 내보냈다. 전에 없던 일이라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가 내뱉은 첫마디는 남편의 상태가 비관적이라는 것이었다. 악화라는 말보다 비관적이라는 말이 더 뇌리를 파고들었다. 치료 방법은 김일한 교수가 말한 것처럼 항암제 복용을 들었지만 그것도 혈액 종양학과 교수의 판단에 달렸다고 했다. 치료 방법이 없을 수도 있다는 말 아닌가. 머릿속이 캄캄해 왔다.

진료실 밖으로 나오니 남편이 나를 찾았다는 듯 어디 갔다왔냐는 표정이었다. 그는 진료실을 들어갔다가 나온 것을 기억하지 못한 것 같았다. 하지만 물을 것이 없는지 물을 얘기를 잊어버렸는지 그조차 알 수 없지만 더이상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의사가 무슨 말을 했냐고 물어오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그런 그에게 나 역시 어떤 말을 건네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얼굴을 보니 그냥 눈물이 쏟아졌다. 우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아 화장실을 다녀왔다.

오늘은 혈액종양학과 허대석 교수의 진료가 있는 날이다. 그 역시 남편의 상태가 악화되었다고 한다. 세 명의 의사가 똑같이 진단하는 것을 보니 정말로 남편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겠다. 아니, 전과 달리 나빠진 것 정도는 나도 이미 알고 있다. 일상에서 그는 자주 발작을 하고 있고 방금 했던 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의사들의 사실 확인은 나를 수렁으로 밀어넣었다. 그는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지만 일단 항암제를 투약해 보잔다. 나는 그 말의 뜻을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아직 방법이 남아있다는 것만을 다행으로 여겼다. 항암제 투약 전에 몸을 이완시켜야한다며 이완제를 우선 처방해 줬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남편은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았지만, 아니 어쩌면 그럴 힘이 남아 있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지 못한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온 남편의 얼굴에는 핏기가 하나도 없었다. 병원 데리고 다니다가 사람잡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걱정이 되었다. 그는 곧바로 안방으로 들어가 드러누웠다. 저녁 때가 되어도 일어나지 못했다. 몸이 약을 받아들이려면 일단은 잘 먹어야하는데 잠의 나락에 빠져 일어날 줄 몰랐다. 그가 어서 일어나 식사를 해 주면 좋겠다. 그렇게만 해준다면 시간 감각도 없고 기억도 저물어가는 사람이 저렇게 잠을 자다가 영영 암흑 속으로 사라져버릴 것 같은 두려움에 떨지 않을 텐데. (2010년 11월 9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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