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마어마하게 오다
정현종의 〈방문객〉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머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어마어마하게 오다
이 시의 첫 구 “사람이 온다는 건/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라는 말을 만나고 난 다음부터 ‘어마어마한’이라는 말을 좋아하게 됐다. 얼마나 좋냐고 물으면 어마어마하게 좋다고 했고, 얼마나 맛있냐고 물으면 어마어마하게 맛있다고, 가끔은 어마어마하게 힘들다고 하면서 그 말을 입에 올리는 일을 은근히 즐겼다.
‘어마어마하다’는 크기를 과장하는 말 같지만 사실은 크기를 재지 못할 때 쓰는 말이다. 가늠이 안 될 때, 딱 맞는 말이 떠오르지 않을 때, 느낀 만큼을 설명할 길이 없을 때 말이다. 그래서 이 시에서의 ‘어마어마한’은 놀랍다거나 대단하다는 뜻에 가깝지 않다. 차라리 감당이 안 된다는 쪽에 가깝다. 한 사람이 내 앞에 선다는 사실이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는 고백 같은 말이다.
나는 그 뒤로 ‘어마어마하다’는 말을 가볍게 쓰면서도 마음 한쪽에서는 늘 조금 다르게 듣는다. 누군가를 만난 날, 그날이 평소보다 오래 남을 때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면 속으로 중얼거린다. 아, 오늘은 좀 어마어마했다.
어쨌든 이 시는 사람이 온다는 걸 ‘방문객’이라 했으니 실제로는 우리가 서로의 삶에 잠시 들르는 사이라는 뜻일 것이다. 내 곁에 오래 머무는 사람도, 금세 스쳐 지나간 사람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 한때의 체류자에 가깝다. 나 역시 타인에게 그런 사람이다.
그래서 관계는 소유가 아니라 통과에 가깝고, 남는 것은 붙잡았던 시간보다 어떻게 지나갔는가 하는 태도일지도 모른다. 문을 열어 주는 일보다 중요한 건 그 사람이 떠난 뒤에도 방 안의 공기가 탁해지지 않게 하는 일이다.
방문객이라는 말은 실은 인간이 유한한 존재라는 뜻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언젠가 사라질 운명이라면, 만남의 방식 또한 달라져야 한다. 영원할 것처럼 대하지도, 다시는 보지 않을 것처럼 대하지도 않는 일.
우리는 잠시 머무는 존재이고, 내게로 오는 타인 또한 그의 지난날들과 아직 오지 않은 날들까지 함께 데리고 온다. 그러니 보이는 모습만으로 그를 판단할 수는 없다. 아무 일 없다는 얼굴에도 이미 여러 번 흔들렸던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있을 테니까. 늘 상냥하고 친절해야 한다.
그래서 사람이 온다는 건 반가움이나 번거로움 이전에 경외에 가깝다. 한 사람이 온다는 것은 단순한 방문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가 잠시 나의 세계와 맞닿는 일이다. 사람이 오는 것이 이토록 위대하고 고귀하다면, 그에 걸맞게 존중하며 예의를 지켜야 할 것이다. 말의 속도를 늦추고 마음의 손길을 가볍게 해야 한다.
부서지기 쉬운 마음을 가졌고 또 부서졌을지도 모를 그 여린 마음을 가졌으니, 저기 내게로 오고 있는 사람을 위해 먼저 내 안의 성급함을 접고 목소리를 낮춰야겠다. 바람처럼 가볍게 서 있어야겠다.
사람은 누구나 이 지구라는 행성에 잠시 머물다 갈 방문객. 영구히 머물 것처럼 목소리를 높이고 자리다툼을 하며 살 일이 아니라, 잠시 들렀다 가는 존재답게 가벼운 발걸음으로 흔적을 최소한으로 남기며 지나가야 할 것이다.
이 시가 어마어마한 것은 누구나 다칠 수 있고 누구나 흔들렸으며 그럼에도 여기까지 와 있다는 사실을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느끼게 한다는 데 있다. 인간의 소중함을 선언하지 않으면서도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만드는 것, 한 사람이 온다는 일이 세상에 또 하나의 시간이 도착하는 일임을 낮은 목소리로 알아차리게 하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