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 기다림
박목월의 〈閏四月〉
松花가루 날리는
외딴 봉오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직이 외딴 집
눈 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이고
엿듣고 있다
외딴 기다림
이 시는 ‘외딴’ 산봉우리의 ‘외딴’ 집에 사는 ‘눈먼’ 처녀가 생동하는 봄에 귀 기울이는 모습을 보여 준다. ‘눈먼’이라는 말은 단순한 신체 조건이라기보다 봉우리와 집에 붙은 ‘외딴’의 성격이 사람에게까지 옮겨 앉은 표현처럼 느껴진다. 외딴이란 홀로 떨어져 관계가 닿지 않는 상태이며, 외로움뿐 아니라 단절과 고립의 감각까지 함께 품는 말이다.
이 시의 외로움은 공간에서 시작해 존재에게로 옮겨 온다. 외딴 봉우리에서 외딴 집으로, 다시 외딴 사람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봉우리와 집은 처녀의 고독을 둘러싼 배경이 아니라 그 상태를 드러내는 형식이 된다. 산속의 집이 마을에서 떨어져 있듯 처녀 또한 세계와 직접 마주할 수 없는 위치에 놓인다. 공간의 고립이 인간의 고립으로 스며들면서 외로움은 상황이 아니라 존재의 조건처럼 느껴진다.
그때 말을 거는 것은 사람 대신 꾀꼬리 울음이다. 반가운 소식처럼 들리지만, 그 울음이 전하는 말은 “윤사월 해 길다”이다. 본래 이 말은 느긋하고 넉넉한 봄의 정서를 품는다. 햇살이 길어지고 시간이 많아졌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말이 눈먼 처녀에게 닿는 순간 의미는 달라진다. 누군가에게 길어진 해는 더 오래 바깥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고 더 많은 만남이 가능한 시간이지만, 문설주에 기대어 들어야만 하는 처녀에게 길어진 시간은 만남이 늘어나는 시간이 아니라 기다림이 늘어나는 시간이다. 따뜻한 소식이지만 따뜻해질 수 없는 자리에서 듣는 소식.
결국 “해 길다”는 말은 여유가 아니라 끝나지 않는 시간을 알리는 말이 되고, 그 길어진 시간만큼 고독도 길어진다. 봄의 넉넉함은 위로가 되지 못하고 오히려 세계와 자신의 거리를 또렷하게 드러낸다. 그래서 꾀꼬리 울음은 밝은 계절의 소리가 아니라 고독을 지속시키는 소리로 남는다.
처녀는 밖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문설주에 기대어 기척을 듣는다. 고립은 침묵으로 이어지지 않고 오히려 더 예민한 감각으로 바뀐다. 귀로 세계를 오래 붙잡는 방식으로. 따라서 ‘눈먼’이라는 말은 결핍이 아니라 그가 서 있는 자리를 드러내는 표현이 된다. 세상 가장자리에서 봄을 보지 못하고 듣는 자리, 그 자리의 고독이 시 전체의 분위기를 만든다.
보이는 봄과 들리는 봄 사이의 간격, 그 틈에 처녀의 시간이 놓여 있다. 그녀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었을까. 꾀꼬리가 우는 계절이면 늘 떠오르는 어떤 존재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같은 소리를 들을 때마다 같은 마음이 되살아나는 기억처럼. 그래서 처녀의 기다림은 바깥의 움직임이 아니라 이어져 온 약속에 가깝다. 누군가 오던 때가 있었거나, 오기로 했으나 끝내 오지 못한 시간이 있었거나. 확인되지 않기에 기다림은 끝나지 않고 계절이 돌아올 때마다 다시 시작된다.
이 시의 봄은 현재의 계절이라기보다 되풀이되어 도착하는 시간에 가깝다. 처녀는 새로운 봄을 맞는 것이 아니라 매번 같은 봄을 다시 듣는다. 어쩌면 그녀가 기다리는 것은 특정 사람이 아니라 끝내 도착하지 못한 시간일지도 모른다. 결국 이 작품은 봄의 생동을 그리기보다 그 생동과 처녀 사이에 남아 있는 거리를 오래 느끼게 하는 시로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