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의 〈주막〉
백석의 〈주막〉
호박잎에 싸오는 붕어곰은 언제나 맛있었다
부엌에는 빨갛게 질들은 八모알상이 그 상우엔 새파란 싸리를 그린 눈알만한 盞이 뵈였다
아들아이는 범이라고 장 고기를 잘 잡는 앞니가 뻐드러진 나와 동갑이었다
울파주 밖에는 장꾼들을 따러와서 엄지의 젖을 빠는 망아지도 있었다.
생이 이어지던 주막
백석의 〈주막〉은 어릴 적 어른을 따라갔던 주막의 풍경을 떠올리는 회상의 작품이다. 대개의 주막이 어른들의 술자리로 왁자지껄한 공간이지만, 이 시에서 화자의 시선을 붙드는 것은 어른들이 아니다. 호박잎에 싸오는 붕어곰, 부엌의 빨갛게 질들인 팔모알상과 새파란 싸리 무늬의 잔, 동갑내기 주막집 아들 범, 그리고 울타리 밖에서 엄지의 젖을 빠는 망아지 같은 존재들이다.
술잔을 돌리고 목소리를 높이던 어른들의 기척은 배경으로 물러난다. 화자에게 남은 것은 음식의 맛과 색채의 대비를 이루는 오래된 상, 그리고 또래와 망아지다. 손에 잡히는 사물과 함께 숨 쉬던 존재들의 감각이다. 잔고기를 잘 잡던 범은 뻐드러진 앞니를 가졌는데, 그 앞니는 아이의 얼굴을 또렷하게 남겨 두는 작은 흔적처럼 기억된다. 범은 주막집 아들이지만 화자에게는 장사를 돕는 아이가 아니라 같은 높이에 서 있던 친구였다. 그래서 붕어곰의 맛은 어른들의 안주가 아니라 또래와 함께 있던 자리의 온기로 바뀐다.
특히 붕어곰은 범이 장고기를 잘 잡는 아이로 그려진다는 점에서 의미가 겹쳐진다. 마치 그 붕어곰 속의 붕어 또한 범의 손을 거쳐 온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먹는 사람과 고기를 잡는 아이가 하나의 생의 흐름 속에 놓이고, 그 장면은 다시 울타리 밖 엄지의 젖을 빠는 망아지로 확장된다. 안에서는 사람이 익힌 음식을 먹고, 밖에서는 새끼 말이 젖을 먹는다. 조리된 음식과 젖이라는 두 장면이 겹치면서 주막은 술집이 아니라 생이 이어지던 자리로 재구성된다.
백석 시에 두드러지는 음식의 묘사는 단순한 미각의 표현이 아니다. 음식은 맛을 설명하기 위해 등장하기보다 사람이 살아온 자리와 관계를 드러내는 매개로 기능한다. 〈주막〉에서 붕어곰이 먼저 제시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무엇을 먹었는가보다 그 음식을 누가 건네고 어디에서 먹었는가가 기억의 중심이 된다. 이 때문에 백석의 음식은 향토적 정취를 강조하는 장식으로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사소한 식재료와 조리된 음식이 등장할수록 기억은 삶의 내부로 더 깊이 들어간다. 붕어곰이 남기는 것은 맛의 인상이 아니라, 그 음식을 둘러싸고 존재하던 사람과 공간의 온기이다.
그런 세계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슬픔을 직접 말하지 않지만 서늘하고, 추억이라고 부르지 않지만 이미 시간이 건너가 버린 장면들이다. 소란은 사라지고 함께 숨 쉬던 생의 밀도만이 희미하게 남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 세계가 한때 분명히 존재했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