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록 146

윤곤강의 <나비>

by 인상파

윤곤강의 <나비>


비바람 험상궂게 거쳐간 추녀 밑ㅡ

날개 찢어진 늙은 호랑나비가

맨드라미 대가리를 물고 가슴을 앓는다.


찢긴 나래에 맥이 풀려

그리운 꽃밭을 찾아갈 수 없는 슬픔에

물고 있는 맨드라미조차 소태 맛이다.


자랑스러울손 화려한 춤재주도

한 옛날의 꿈조각처럼 흐리어

늙은 舞女처럼 나비는 한숨진다.(1930년, 시문학)



또렷하지만 머뭇거리지 않는 시


탄로가처럼 읽히는 윤곤강의 〈나비〉를 어디선가 접한 기억이 있다. 그게 언제인지는 또렷하지 않다. 아마도 학교 다닐 때였을 것이다. 내 기억 저장고에는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만났던 수십 편의 시와 소설, 수필의 잔상이 깊게 각인되어 있다. 요즘 나는 그것들을 어떻게든 내 식으로 다시 읽어보고 싶은 욕심에 ‘독서록’이라는 이름 아래 적어 내려가고 있다. 기억의 창고를 더듬다 보니 윤곤강의 〈나비〉도 어엿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내게 어떤 식으로든 궤적을 남긴 작품임은 분명하다. 다만 그 궤적은 깊이라기보다 단촐함과 단순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단촐함과 단순함이 어쩌면 이 시가 오래 남은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복잡하게 얽히지 않고, 비틀리지도 않으며, 의미가 한 방향으로 또렷하게 흘러가는 시. 읽는 순간 이해되었고, 이해된 채로 오래 굳어버린 시였다.


교과서에서 배운 해석은 분명했다. 비바람에 날개가 찢긴 늙은 나비는 젊은 시절의 영화를 잃은 인간의 모습이고, 돌아갈 수 없는 꽃밭은 지나간 시간이며, 맨드라미의 붉음은 여전히 남아 있는 세계의 생기다. 마지막의 한숨은 체념이다. 설명은 단정했고, 그래서 이 시는 어렵지 않았다.


나는 그 단순함 덕분에 시를 이해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다시 꺼내 보니, 그 단순함은 동시에 이 시의 한계이기도 했다. 의미가 분명한 대신 여백이 적고, 던질 질문이 없다. 장면은 또렷하지만 머뭇거림은 없다. 그럼에도 이 시가 기억 속에 남아 있다는 사실은, 완전히 스쳐 지나간 작품은 아니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어쩌면 이 시가 남긴 것은 깊이가 아니라 선명함이었는지도 모른다. 젊음과 노년, 가능성과 단절, 생기와 상처라는 대비가 너무 또렷해 한 장면처럼 머릿속에 고정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또렷함을 다시 들여다보며, 그때는 보지 못했던 단조로움과 직선성을 비로소 인식하고 있다.


이 시의 단조로움은 어조에서 먼저 드러난다. 비바람, 찢긴 날개, 돌아갈 수 없는 꽃밭, 한숨. 정서의 온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슬픔은 이미 확정되어 있고, 그 확정된 슬픔은 낮게 깔린다. 감정의 급격한 전환도, 아이러니도, 반전도 없다. 독자는 장면을 따라가지만 뜻밖의 굴곡을 만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시는 독자를 붙들기보다 설명하고 지나간다.


전개 또한 직선적이다. 비바람에서 시작해 찢긴 날개로 이어지고, 꽃밭에 닿지 못한 채 과거의 화려함을 떠올리다 한숨으로 마무리된다. 의미는 곁길로 새지 않고, 처음 제시된 슬픔은 끝까지 같은 방향으로 흘러간다. 독자의 머릿속이 복잡해질 까닭이 없다. 시가 스스로 결론을 내리기 때문이다. 이는 명료함을 주는 대신 여백을 줄인다. 머뭇거리거나 질문하거나 의미를 새로 발견할 틈이 적다.


그래서 이 시는 깊게 파고들기보다는 하나의 상태를 또렷하게 제시한다. 노쇠, 상실, 되돌릴 수 없음. 그 상태를 비틀거나 확장하지 않고 그대로 보여준다. 어쩌면 바로 그 단조로움과 직선성 때문에 이 시는 오래 기억에 남았는지도 모른다. 복잡하지 않기에 잊히지 않고, 선명하기에 고정된다. 그러나 동시에 그 선명함이 더 이상 질문을 낳지 않는 순간, 시적 긴장은 멈춘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 또렷한 장면 앞에서, 한숨을 쉬는 나비를 바라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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