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록 153

유치환의 〈春信〉

by 인상파

유치환의 〈春信〉


꽃등인 양 창 앞에 한 그루 피어오른

살구꽃 연분홍 그늘 가지 새로

적은 멧새 하나 찾아와 무심히 놀다 가나니


적막한 겨우내 들녘 끝 어디메서

적은 깃을 얽고 다리 오그리고 지나다가

이 보오얀 봄길을 찾아 문안하여 나왔느뇨


앉았다 떠난 아름다운 그 자리 가지에 餘韻 남아

뉘도 모를 한때를 아쉽게도 한들거리나니

꽃가지 그늘에서 그늘로 이어진 끝없이 작은 길이여



‘바위’의 시인에게서 ‘멧새’를 보다


유치환 하면 내게는 〈깃발〉, 〈바위〉, 〈생명의 서〉의 시인이었다. 한국 현대 대표시선집에서 가려뽑은 그의 대표작으로 〈춘신〉도 엄연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 작품을 그동안 눈여겨보지 않았다. 그런 시가 오늘에사 눈에 들어왔다. 이제야 눈에 들어온 것도 다 까닭이 있을 것이다. 이 시가 내게 ‘봄소식’을 알려주려 했던 것은 아닐까.


〈춘신〉, 봄소식이라는 이 시를 읽으며 왠지 유치환의 시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내가 알고 있던 그의 시는 늘 현실을 진공상태로 만들어 놓고, 오로지 고통과 번뇌가 가득한 관념의 세계에 몰두해 있었다. 마치 플라톤의 이데아를 향해 손을 뻗는 사람처럼, 또는 붓다가 생로병사의 근원을 응시하듯 존재의 본질을 파고드는 목소리였다. 거기에는 단단함이 있었고, 고독이 있었고, 무엇이 되겠다는 결의가 있었다. 열사의 땅에서 제 몸을 극한의 고통에 떠미는 수행자의 모습.


그러나 이 시에는 이데아도 없고, 생로병사의 사유도 없다. 연분홍 살구꽃이 있고, 그 그늘 가지로 작은 멧새가 찾아든다. ‘적은’이라는 말이 두 번이나 쓰인다. 생명은 거창하게 불리지 않는다. 그저 작고, 무심하다. 봄소식이라면 으레 새싹이나 꽃이 먼저 떠오른다. 이 시 역시 연분홍 살구꽃으로 시작한다. 창 앞에 한 그루 피어오른 꽃은 ‘꽃등인 양’이라 했다. 등불에 비유된 꽃은 봄을 밝히는 존재다. 그 살구꽃 가지로 ‘적은 멧새 하나’가 찾아든다.


적막한 겨우내 들녘 끝 어디메서

적은 깃을 얽고 다리 오그리고 지나다가


멧새는 겨울을 통과해 왔다. ‘적막한 겨우내’라는 시간의 무게와 ‘다리 오그리고’라는 몸의 자세는 이 생명이 얼마나 위축된 채 견뎌 왔는지를 보여준다. 봄은 계절의 순환이기 전에, 견딤의 결과다.


이 보오얀 봄길을 찾아 문안하여 나왔느뇨


‘문안’이라는 이 표현은 이 시의 정조를 결정하는 것 같다. 멧새의 상춘을 문안이라고 표현하다니, 봄을 맞이하러 나온 것이 아니라 봄길을 찾아 인사를 드리듯 나왔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들뜬 기쁨도, 환호도 없다. 대신 예를 갖춘 태도가 있다.


상춘이 유희라면 문안은 예의다. 놀러 나온 새가 아니라, 겨울을 건너온 작은 생명이 조심스럽게 계절을 맞는 모습이다. 봄이라는 계절은 찾아가 문을 두드려야하는 그 무엇이 된다. 이 한 단어는 시의 숨결을 낮춘다. 멧새의 움직임은 가볍지만, 그 태도는 가볍지 않다. 겨우내 적막을 견딘 존재가 봄 앞에 서는 자세가 이 ‘문안’이라는 말 속에 담겨 있다.


‘문안’이라는 시어를 읽으며 유치환의 언어가 달라졌다는 생각을 했다. 선언하던 목소리가 아니라, 몸을 낮추는 목소리. 높이 세우던 관념 대신, 계절 앞에서 조심스레 인사를 건네는 생명. 결의 대신 겸손. ‘문안’이라는 한 단어가 이 시 전체의 온도를 정한다.


앉았다 떠난 아름다운 그 자리 가지에 여운 남아

뉘도 모를 한때를 아쉽게도 한들거리나니


시의 중심은 멧새가 아니라 새의 떠난 자리다. ‘뉘도 모를 한때’라는 말은 이 시가 더 이상 거대한 관념을 향하지 않는다는 증거처럼 보인다. 아무도 모르는 순간, 그러나 분명히 존재했던 시간. 그 시간이 한들거린다.


꽃가지 그늘에서 그늘로 이어진 끝없이 작은 길이여


그늘에서 그늘로 이어진 작은 길. 그러나 ‘끝없이’ 이어진다. 거창하지 않되 끊어지지 않는 길. 나는 여기서 이전의 유치환이 세우려 했던 세계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높이 세우지 않아도, 작게 이어갈 수 있다는 깨달음처럼.


〈춘신〉을 읽으며 나는 유치환을 새로 보게 되었다. 현실을 지워버리고 관념만을 세우던 시인이 아니라, 겨울을 건너온 작은 생명의 몸을 오래 바라볼 줄 아는 시인으로. 플라톤의 이데아를 향해 서 있던 시인이 아니라, 살구꽃 그늘 아래 앉았다 떠난 멧새의 자리를 오래 응시하는 시인으로.


어쩌면 〈춘신〉은 그의 목소리가 약해진 것이 아니라, 현실을 받아들인 순간인지도 모른다. 관념이 사물 속으로 자리를 잡고 내려오고, 의지가 체온을 얻는 자리. 그 자리에서 봄은 소리 소문 없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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