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록 156

김신회의 《친애하는 나의 술》

by 인상파

김신회의 《친애하는 나의 술》


술에는 ‘적당히’가 없다


제목만 보면 술 예찬론처럼 보인다. 술을 향한 애정 어린 고백쯤으로 읽힐 법하다. 그러나 소설은 정작 단주 모임을 앞세운다. 술을 끊기 위한 이야기다. 여기서 잠시 멈칫하게 된다. 술 냄새도 아직 맡지 못했는데 술을 끊으라고 하다니. 술을 이야기하면서 술을 금지하는 셈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묘한 아이러니를 품고 있다. 술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술에서 도망치는 이야기. 술 예찬처럼 시작하지만 결국 술의 폐허를 보여준다. ‘친애하는 술’이라는 말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정말 친애해서 부르는 이름일까. 아니면 작별을 고하는 마지막 인사일까.


김신회의 《친애하는 나의 술》은 알코올 중독자의 이야기다. 술을 즐기고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술에 미쳐 사는 사람의 고백을 흥미롭게 읽었다. 책은 술술 읽힌다. 그런데 읽다 보면 한 가지 답답한 지점이 있다. 주인공 여자가 왜 그렇게까지 술을 마셔야 했는지 독자를 충분히 이해시키지 못한다는 점이다. 설명이라기보다 변명처럼 느껴지는 대목들이 이어진다.


하기야 술꾼이란 그런 존재인지도 모른다. 술을 마셔 놓고도 안 마셨다고 하고, 많이 마셔 놓고도 아직 덜 마셨다고 한다.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면서도 끝내 아니라고 우긴다. 그러니 자기가 술을 마신 이유를 또렷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나저나 책을 읽다 보니 단주 모임의 마무리에서 모든 멤버가 한목소리로 외우는 기도문이 눈에 박혔다. ‘평온을 구하는 기도’다.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는 평온을 주시고

바꿀 수 있는 것은 변화시키는 용기를 주시고

이 둘을 구별하는 지혜를 주소서.


그러나 인생을 살다 보면 중독이 아니더라도 이 기도가 말하는 평온과 용기와 지혜가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 알게 된다. 살다 보면 바꿀 수 없는 일들이 있다.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 되돌릴 수 없는 선택, 사람의 마음 같은 것들이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억지로 붙잡는 힘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평온일 것이다.


반대로 바꿀 수 있는 일들도 있다. 나의 태도와 습관, 내가 반복하는 선택들. 그런 것들은 결국 스스로 바꾸어야 한다. 그때 필요한 것은 용기일 것이다. 문제는 늘 그 사이에 있다.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지 사람은 쉽게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이 기도문의 마지막 말이 가장 어렵다. 이 둘을 구별하는 지혜.


소설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가족이라는 것도 다시 돌아보게 된다. 돈만 벌어다 주면 된다고 생각하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에 대해 목소리를 닫거나 불만을 쏟아내던 어머니.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하지만 서로의 마음에는 닿지 못하는 가족의 모습이 떠오른다.


주인공은 자기 가족을 식당의 샘플 음식 같다고 말한다. 보기에는 그럴듯하지만 실제로는 먹을 수 없는 음식. 겉모습은 가족이지만 따뜻한 인간미가 없는 관계라는 뜻일 것이다.


그런 집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마음 한쪽에 공허와 결핍이 쌓였을지도 모른다. 경제적으로 문제가 없고 가족구성원이 온전하다고 해서 결핍이 없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어쩌면 그 공허가 그녀를 술로 이끈 것은 아닐까.


술이 처음부터 사람을 술꾼으로 만드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미 마음 어딘가에 균열이 있을 때,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것이 술일지 모른다. 주인공이 자기 주관이 약하고 늘 불안한 영혼처럼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누군가에게 단단히 기대어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스스로의 중심을 세우는 일도 어려울 테니까.


과유불급이라 했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사람은 부족해서 탈이 나기보다 지나쳐서 문제를 일으킨다. 술도 마찬가지다. 술에는 ‘적당히’라는 말이 잘 붙지 않는다.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두 잔이 또 한 잔을 부른다. 그러다가 ‘적당히’ 중독이 된다.


중독되면 술독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마신 술에 익사하듯 무너지고, 병원에 들어가 감금되다시피 하고 퇴원해서는 단주 모임을 돌아다니며 하루를 버틴다. 그렇게 살아가는 삶에는 커다란 공백이 남는다.


요지는 이것이다.

술을 마실 때에도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고, 바꿀 수 있는 것은 변화시키는 평온과 용기, 그리고 이 둘을 구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중독에 이르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때는 이른바 ‘평온을 구하는 기도문’이 더욱 절실해진다.


술은 사람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삶의 중심을 흔들어 놓는다. 그래서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지 스스로 분별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럴수록 평온과 용기, 그리고 그 둘을 가르는 지혜는 더 간절한 덕목이 된다.


어쩌면 이 소설이 말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것일지 모른다. 술의 이야기가 아니라 술 앞에서 무너진 한 인간이 다시 삶의 균형을 찾으려 애쓰는 이야기라는 것을.


어쨌든 이 책은 술을 즐기는 사람에게 선뜻 권하고 싶은 책은 아니다. 읽다 보면 술맛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친애하는 나의 술》. 참 묘한 제목이다. 술을 ‘친애한다’고 부르는 말은 아마 술꾼들만이 붙일 수 있는 호칭일 것이다. 술에는 ‘적당히’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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