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육사의 〈絶頂〉
이육사의 〈絶頂〉
매운 계절의 채쭉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진 그 우에 서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결기’의 자리인가, ‘피로’의 자리인가
이육사의 〈절정〉은 저항시인의 상징처럼 읽혀왔다. 그의 저항이 더 이상 갈 데 없는 북방의 고원에까지 밀려간 것일까.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이라니, 그것은 물리적 공간이라기보다 역사의 막다른 벼랑처럼 느껴진다. 더 물러설 곳도, 더 디딜 곳도 없는 마지막 선지에서 그는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라는 물음은 굴복의 가능성을 묻는 질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무릎 꿇을 자리조차 없다는 의미에 가깝다. 굴복할 자리도 허락되지 않는 상황.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는 절대 고립의 상태.
이 시적 공간은 실제 북방 유랑의 체험일까, 아니면 궁지에 몰린 내면의 풍경일까. 둘을 굳이 나눌 수는 없을 것이다. 식민 현실이라는 외부 조건이 그의 몸을 밀어붙였고, 그 압박은 내면의 극한으로 번져갔다. 현실은 심리가 되고, 심리는 다시 시적 공간으로 형상화되었다.
“매운 계절의 채쭉”은 분명 바깥으로부터 가해진다. 시대가 휘두른 채찍이다. 그 채찍에 갈겨진 자리에서 그는 “서릿발 칼날진 그 우에 서다”라고 말한다. ‘서다’는 이 시에서 가장 단단한 동사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 시는 흔히 의지의 절정으로 읽힌다. 더 물러설 곳이 없기에 오히려 물러서지 않는 자리, 눈을 감고 사유함으로써 겨울을 강철의 무지개로 바꾸는 상상력.
이런 흐름에 동조하면서도, 나는 매번 다른 감각에 붙들렸다. 결기보다 먼저 피로가 느껴졌다. “매운 계절의 채쭉에 갈겨 /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 여기서 주어는 능동적이지 않다. 갈겨지고, 휩쓸려 온다. 선택한 게 아니라 떠밀려 도착한 자리다. 하늘조차 “그만 지쳐” 끝났다고 하지 않는가. 하늘도 지쳤다면, 그 아래 선 인간의 피로는 어떠했을까.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는 굴복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역설이라기보다, 잠시라도 내려앉고 싶은 몸의 피로에 가깝다. 그러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휴식의 자리도, 포기의 자리도 허락되지 않는다. 그저 서 있어야 하는 상황.
그래서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이 구절은 대단한 사유라기보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인간이 취하는 가장 소박한 행위처럼 느껴진다. 외부와의 세계를 차단하고 잠시 안으로 숨는 일. 행동이 막힐 때 남는 최소한의 자유.
오랫동안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라는 구절 앞에서 서성였다. 무지개라는 단어는 주로 희망으로 읽곤 하지만, 거기에 마음이 쉽게 열리지 않았다. 무지개는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빛이다. 그런데 그 앞에 ‘강철’을 붙였다. 차갑고 견고하고 오래 지속되는 금속. 덧없음에 영속성을 덧씌운 이 모순이 선뜻 희망으로 읽히지 않았다.
더구나 이 비유의 원관념은 무지개가 아니라 ‘겨울’이다. 시는 무지개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겨울을 형상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구절은 “겨울 속에도 희망이 있다”기보다, 겨울이 하늘을 가로지르는 하나의 단단한 형체로 걸려 있다는 뜻에 가까운 건 아닐까. 강철처럼 차갑고, 무지개처럼 휘어 있으되 사라지지 않는 모습의 겨울.
그래서 나는 이 구절을 희망으로 단정하지 못한다. 그것은 더 물러설 곳 없이 밀려온 자리에서, 더는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서 마주한 현실의 완결된 모습처럼 보인다. 희망의 약속이라기보다 혹독함의 이미지.
그런데도 그 이미지는 끝내 ‘빛’의 형태를 하고 있다. 완전한 어둠은 아니다. 차가운 금속이지만 그래도 하늘에 걸린 아치로 남아 있다. 그 빛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직 단정할 수 없다. 다만 혹독한 겨울조차 하나의 형상으로 붙들어 두려는 상상력이 그 자리에 있다.
어쩌면 이육사가 붙든 것은 봄의 예감이 아니라, 겨울을 끝까지 겨울로 인정하는 태도였을지도 모른다. 따뜻하게 위로하지 않고, 차가운 금속성 그대로의 시간. 강철로 된 무지개는 희망이라기보다 겨울을 견디는 동안 끝내 지워지지 않는 어떤 인식의 흔적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