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록 169

백석의 <산(山)비>

by 인상파

백석의〈산비(山)〉


산(山)뽕잎에 빗방울이 친다

멧비둘기가 난다

나무등걸에서 자벌기가 고개를 들었다 멧비둘기 켠을 본다



빗속의 긴장


백석의 〈산비〉는 3행으로 이루어진 짧은 시다. 산뽕잎에 빗방울이 치고, 멧비둘기가 날고, 자벌기가 고개를 들어 그 ‘켠’을 본다. 그저 비 내리는 산의 풍경처럼 읽힌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시는 단순한 풍경이 아니다. 빗방울이 친다. 그 소리에 멧비둘기가 날아오른다. 그리고 나무등걸에 붙어 있던 자벌기가 고개를 들어 날아가는 비둘기 쪽을 본다.


여기서 자벌기는 비를 보지 않는다. 비둘기를 본다. 이 작은 차이가 이 시의 결을 바꾼다. 비는 그저 시작일 뿐이다. 진짜 움직임은 그 다음에서 일어난다.


비가 친다.


무슨 일이 시작되려는 징조처럼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그 기척에 새가 날고, 그 움직임에 벌레가 반응한다.


그렇게 두고 보면 이 시는 비의 시가 아니라 기척의 시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하나의 움직임이 다른 움직임을 불러내는 연쇄의 시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은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라 가장 낮은 자리의 긴장으로 끝난다.


자벌기는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는 것일까. 비를 맞는 감각이 아니라 비둘기의 비상에서 오는 어떤 위협, 혹은 그 기척일 것이다.


비는 자연의 일부지만 비로 인해 일어난 움직임은 곧 생의 문제로 이어진다.


그래서 이 시는 비를 보여주면서도 비를 말하지 않는다. 대신 비로 인해 드러난 살아 있음의 상태를 보여준다. 그 상태는 평온하지 않다.


작은 존재일수록 더 민감하게 흔들리는 세계다. 시의 시선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온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에서 시작해 공중을 가르는 새를 지나 마침내 나무등걸의 벌레에 닿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멈춘다.


이 멈춤이 이 시의 핵심이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날카로운 감각이 살아 있다.


그래서 이 시는 산비의 풍경을 그린 것이 아니라 산속 생명의 긴장을 그린 시라고 해야 할 것이다.


비는 내리고 있지만 그 빗속에서 모든 것은 서로를 의식하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그 장면을

그저 멀찍이 서서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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