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의 〈내가 생각하는 것은〉
백석의 〈내가 생각하는 것은〉
밖은 봄철날 따디기의 누긋하니 푹석한 밤이다
거리에는 사람두 많이 나서 흥성흥성 할 것이다
어쩐지 이 사람들과 친하니 싸다니고 싶은 밤이다
그렇건만 나는 하이얀 자리 우에서 마른 팔뚝의
샛파란 핏대를 바라보며 나는 가난한 아버지를 가진 것과
내가 오래 그려오던 처녀가 시집을 간 것과
그렇게도 살틀하든 동무가 나를 버린 일을 생각한다
또 내가 아는 그 몸이 성하고 돈도 있는 사람들이
즐거이 술을 먹으려 다닐 것과
내 손에는 신간서(新刊書) 하나도 없는 것과
그리고 그 ‘아서라 세상사(世上事)’라도 들을
유성기도 없는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이 내 눈가를 내 가슴가를 뜨겁게 하는 것도 생각한다
작아지는 쪽으로 남는 마음
이렇게 쪼잔한 감정도 시가 되나 싶은 마음이 든다. 좋아하는 여자는 다른 사람에게로 시집가버리고, 살뜰하던 동무는 그를 버렸다. 연인과 친구를 한꺼번에 잃은 자리라면, 분노나 원망이 먼저 나와도 이상할 것이 없다. 누구를 탓해도 어색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런데 이 시는 끝내 그쪽으로 가지 않는다.
사람들과 친하게 싸다니고 싶은 밤이라고 말하면서도, 그는 하이얀 자리 위에 누워 마른 팔뚝의 샛파란 핏대를 바라본다. 밖은 봄철날 따디기의 누긋하니 푹석한 밤이고, 거리에는 사람들이 흥성흥성할 텐데, 그의 시선은 그쪽으로 나가지 못하고 자꾸만 자기 안으로 돌아온다.
화자의 처지는 좋은 것이 하나도 없다. 집안은 가난하고, 실연에 친구까지 잃었다. 절망적이다. 무상한 인생 앞에서 그는 무기력하게 누워 제 몸의 마른 팔뚝을, 그 위에 선명하게 드러난 새파란 핏대를 들여다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이 상태를 벗어나거나 덜어낼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신간서도 없고, 노래도 없고, 술도 없다. 마음을 다른 데로 돌릴 여지나, 잠시라도 잊을 방법이 없는 거다.
유성기가 없어 듣지 못한다는 ‘아서라 세상사’는 편시춘(片時春)의 세계, 곧 인생이 한때의 봄처럼 덧없다는 인식을 담은 노래로, 일제강점기에는 임방울이 즐겨 불렀던 곡이기도 하다. 그러나 화자는 그 노래조차 들을 수 없는 자리에 놓여 있다. 원래라면 그러한 무상을 노래로 넘기고, 한 잔 술로 풀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자리에도 이르지 못한다.
그래서 이 시는 어딘가 궁상스럽고, 조금은 쪼잔해 보이기까지 한다. 멋있게 감정을 정리하거나, 거리를 두거나, 스스로를 연출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감정을 그대로 끌어안은 채, 더 작아지는 쪽으로 기울어 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작아짐이 비루하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끝내 남을 탓하지 못하는 마음의 버릇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화살을 바깥으로 쏘지 못하고 자꾸만 자기 쪽으로 돌려놓는 사람. 그래서 그는 복수를 꿈꾸는 대신, 자기 안에서 그 밤을 오래 붙들고 있는 사람이다.
마지막에 이르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러한 생각이 내 눈가를 내 가슴가를 뜨겁게 하는 것도 생각한다.”
이 생각들조차 다시 “생각한다”고. 울음에 머물지 않고, 그 울음을 다시 들여다본다. 감정 위에 한 겹의 의식이 더해지는 순간이다.
이 지점은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에서 보이는 정서와도 닿아 있다. 슬픔에 잠겨 있으면서도, 그 슬픔을 바라보고 있는 또 하나의 시선. 다만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이 오래 견뎌낸 시간의 자리라면, 이 시는 이제 막 슬픔이 시작되는 밤에 가깝다.
그래서 이 시는 크고 당당한 슬픔의 시가 아니다. 대신 감출 수 없어서 그대로 드러난 마음의 시에 가깝다. 잘 견디는 사람이 아니라, 잘 숨기지 못하는 사람이 남긴 시.
어쩌면 그는 멋있게 버텨내는 사람이 아니라, 끝내 멋있어지지 못한 채 자기 안에서 그 밤을 다 살아내는 사람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