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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상파 Jan 25. 2024

간병일기 12

항암제와 구토

어제 서울대 병원을 다녀왔다. 남편의 채혈과 진료가 있었다. 오전 9시까지 서울대 병원에 도착하려면 넉넉 잡고 6시 반쯤에는 집에서 출발해야했다. 새벽 5시쯤부터 남편을 깨우기 시작했다. 시간에 맞춰 가야하기에 마음이 바빠 죽겠는데 남편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옆에서 말로 하고 일으켜 세우고 해도 일어나질 못했다. 그걸 보다못한 어머니가 화를 버럭 내시자 그 소리가 귀에 거슬렸는지 짜증을 내며 그때서야 잠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새벽 두 시 넘어 잠자리에 들었던 사람이 화장실 두어 번 들락거리고 났으니 잠다운 잠을 잤을 리 없었다. 힘들게 사람을 깨워 겨우 출발할 수 있었다. 머리 아픈 사람이 잠까지 설쳐서일까. 그의  두뇌는 전혀 작동되지 않은 것 같았다. 세상이 낯설게만 느껴진 모양이었다. 집앞의 버스 정류장에서 그곳이 어디인지를 물었다. 서울 지리에 어두운 나를 병원까지 데리고 다녔던 사람이 병원 가는 길을 전혀 알지 못했다. 부모 손을 잡은 아이처럼 내가 손을 잡아 끄는 대로 따라오면서 혼란스러워했다. 혜화역에서 내려 서울대 병원에 들어섰을 때는 그 병원은 처음이라며 지나가는 사람을 두리번거리며 훑어보았다.

본관 채혈실에서 채혈은 금방 끝났다. 진료가 있기까지 2시간 30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딱히 갈 만한 데가 없어 우리는 내리 진료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새벽부터 서두른 탓에 둘 다 피곤하여 의자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졸다가도 몇 번씩 눈을 떠 시계를 확인하니 더디게나마 시간은 진료 시간에 가까워가고 있었다. 혈액 종양학과 허대석 교수는 피 검사 결과에서 문제적인 소견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이완제 복용에서 부작용이 발견되지 않았으니 항암제 복용이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의사는 항암제 테모달 캡슐을 처방해 줬다. 6개월간 복용하되 석 달 후에 변화를 보기 위해 MRI를 찍어볼 계획이라고 했다. 약은 한 달 내리 먹는 게 아니라 5일만 복용한다고 했다. 약국에서 7만원 상당의 약값을 지불했다. 암환자는 중증환자로 분리돼 약값을 5%만 내면 되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갈 일이 걱정이었다. 병원 주변의 돈까스 집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식욕이 없어 못 먹으면 어쩌나 걱정을 했는데 돈까스를 좋아해서 그런지 남김없이 먹었다. 이른 오후라 인천행 전철에는 사람이 그리 붐비지 않아 다행히 앉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남편은 자꾸 헛소리를 늘어놓았다. 피로감 때문인지 상태는 아침보다 훨씬 나빠 보였다. 졸다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병원을 왜 가냐고 물었다가, 식당은 어디쯤이냐고 물었다가, 최광열(아버님) 씨가 집에 오라고 했느냐고  등등을 물어왔다. 남편의 머리에서 어떤 세상이 펼쳐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정상의 경계를 넘어서버린 것 같았다.

저녁부터 당장 약을 복용해야하는데 잠에 곯아떨어진 남편은 저녁이 돼도 일어날 줄 몰랐다. 항암제를 미리 먹게 하고 싶었지만 먹는 약이 많아서 시간을 늦추다 보니 얼추 밤 12시가 가까웠다. 남편에게 약을 먹이고 나니 이제야 긴 하루가 끝난 느낌이었다. 긴장감이 풀려서 그런지 갑자기 피곤이 몰려왔다. 그래도 어떤 돌발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는 일이라 엎드려 지켜보고 있는데 남편이 아아 허어 하며 속이 답답한지 불편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밤 2시 20분쯤부터 구토를 시작하더니 20분 정도의 간격으로 아침 7시까지 해댔다. 나는 세수대야만으로 부족하여 양재기까지 갖다놓고 토사물을 받아냈다. 누런 똥물까지 다 게워내고 나서야 남편의 구토는 잠잠해졌다. 그리고는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이틀 내리 잠을 못 자고 서울까지 남편 데리고 병원 다녀오고 밤중 내내 토해대는 남편을 돌보느라 심신이 아주 너덜너덜해졌다. 손발이 차가워지면서 온몸이 한기로 덜덜 떨려왔다. 코끝에서는 숨만 느껴지고 몸을 이탈한 영혼이 저 혼자 떠돌고 있는 느낌이었다. 멀쩡한 사람도 이 모양인데 아픈 사람은 오죽할까. 모든 것이 절망적으로 다가왔다.(2010년 11월 12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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