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상파 Feb 02. 2024

어머니 말씀 05

어머니 어르신 유치원 보내기

어머니와 함께 동거한 지 3주째. 아침이면 어머니를 깨우는 것에서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어머니 핸드폰에서 아침 7시를 알리는 음성이 나오는데도 어머니는 알림과 동시에 시간을 꼭 물어오신다. 시간을 안다고 달라질 것도 없는데 어머니는 늘 시간을 묻고 뜸을 들이시고 그냥 가만 누워있게 놔두라고 하신다. 센터 차가 도착하는 시간이 있으니 거기에 맞추려면 이불을 어깨 위로 잡아당기는 어머니를 재촉할 수밖에 없다.


아니, 시골에서는 꼭두새벽같이 일어나신 양반이 왜 이리 게을러지셨어요? 얼른 일어나셔요!


오늘은 아무데도 안 갈란다. 나 시골 데려다 놔라. 아침밥을 먹여놓고 어디를 보내려고 야단이냐, 이 야단이?


시골 타령을 하는 양반에게 유치원 얘기를 꺼내면 역효과가 날 것 같아 어디 안 가셔도 좋으니 일단은 머리를 감자며 일어나시라고 했다. 자꾸 깨워대니 안 일어나는 것도 미안한지 엉거주춤 일어나셨다. 머리를 감겨드리고 눌은밥에 반찬 몇 가지에 씨 없는 포도를 내놓았다. 그랬더니 막 일어나는 사람한테 무슨 밥을 먹으라고 그러느냐고 눈을 흘기시며 우두커니 앉아계셨다. 


아, 그래요? 저는 밥하기 싫은데 밥을 하고, 밥 먹기 싫어도 어머니와 함께 먹으려고 이렇게 앉아서 먹잖아요. 먹어야 힘이 나지요! 일단은 드세요. 그리고 내일은 좀 더 일찍 일어나셔서 거실에서 안방으로 왔다갔다하시며 운동도 하시고요. 그럼 밥맛도 좋겠네요.


어머니 맞은편에 앉은 나는 일부러 달다, 고소하다 등의 소리를 내가며 입안에 음식을 집어넣었다. 그런 딸을 보시고 어머니도 입맛을 다시더니 눈 앞에 있는 포도에 손을 대시며 이게 뭐냐고 묻는다.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포도라고, 잡숴보시라고 했더니, 집어 드시기에 뒤이어 수저에 반찬을 얹어줬더니 떠 잡수시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음식을 드시다가 너무 많다고 덜라고 하신다. 드시기 전에 말씀을 하시면 좋은데 꼭 드시다가  말씀을 하신다. 드시는 것도 참 복 없이 드신다. 그게 마음에 안 들어 기어코 또 한소리가 나온다.


아, 어머니 제가 밥에 독약 안 탔으니까 좀 맛나게 드세요. 차려준 사람 성의를 봐서라도 맛나게 들어주세요. 


니가 봐도 그러냐? 내가 밥을 복 떨어지게 먹는다고 동네 여자들이 그러기는 하더라.


당신도 식사 때면 먹성 좋게 드시지 못한 것을 알고 계신다. 건강하셨을 때에도 먹는 걸 앞에 두고 정말 맛나게 드시지 않더니 아프고 나서는 더 심해졌다. 께적거리는 것을 보고 있으니 덩달아 밥맛이 달아났다. 아침 먹고 나면 딸이 당신을 어디론가 내쫓는다는 것은 알고 있다는 듯 어머니의 식사 시간은 세월아 네월아로 더디기만 했다. 어머니는 식탁 앞에 오래 앉아 있는 것이 당신 의사를 관철시키는 방법임을 알고 계시는지도 모르겠다. 내 입에서 또 잔소리가 흘러나온다. 


아따, 어머니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이것저것 준비했는데 어머니가 맛있게 먹어주시기만 하면 참말 좋겠군만. 어머니에게 밥을 차려달라는 것도 아니고 차린 밥 좀 드셔 달라는데 그것이 그렇게 어려우세요?


애원하는 투로 말을 했더니 맞받아치시는 말씀이

 

너, 나 아침먹이고 어디로 내몰려고 그러냐?


노인 유치원이요, 유치원!


결국은 본색을 드러내고 말았다. 먹고 있는 아침이 벌써 다 꺼져버린 것처럼 뱃속이 허전해왔다. 어머니가 저토록 가기 싫어하는 센터를 보내야하는가.  

나는 학교 다니는 것을 무던히 싫어했다. 시골에서 순천으로 고등학교를 다니게 되었을 때다. 세상이 온통 회색빛으로 우울하게 여겨졌다. 인생의 덧없음에, 그 덧없는 인생을 하루 종일 학교에 처박혀 시간을 보내는 것이 대단히 잘못된 일처럼 여겨졌다. 그리고 향수병을 앓았다. 기분은 늘 처지고 우울했다. 그런 내 상태를 어떻게 설명할 도리가 없었다. 학교를 그만 둔다고 했을 때 어머니는 그래도 고등학교는 나와야 한다며 나의 손목을 끌고 학교 근처 자취방에 데려다놓곤 하셨다. 어머니의 바람을 저버리고 나는 그 학교를 자퇴하고 말았다.

모전여전일까? 학교에 대한 거부 반응도 내림일까? 딸아이도 나를 닮아 학교 등교를 거부했다. 나도 예전의 어머니처럼 어떻게든 딸아이를 고등학교는 졸업시켜보려고 학교까지 동행하면서 출석일수를 채워 졸업을 시켰다. 그런데 지금은 아픈 어머니가 어르신 유치원을 안 가겠다고 저리 고집을 피우신다. 낼이면 당신 집에 내려갈 건데 아무도 모르는 사람들 속에 가서 뭐하냐는 것이다. 어머니 머릿속에 남은 것은 평생 사셨던 고향마을로 돌아가시는 그 생각뿐인 것 같았다.

유치원을 안 가겠다는 어머니의 뜻에 결국 굴복하고 나는 일부러 일 때문에 바쁜 척을 한다.


그럼 저는 좀 있으면 학생들이 수업 받으러 오니까 준비할게요. 어머니는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것 하세요. 하루 종일 방에서 가만 누워 계시는 것 좋아하시니까 어머니 방에서 절대 나오시지 말고 거기 가만 누워만 계세요.


이미 유치원 보내기를 포기한 상황이지만 앞으로가 더 문제였다. 오늘처럼 계속 센터를 안 가시겠다고 하면 어쩔 텐가. 하루종일 누워만 계시다가 거동도 못하시게 되고 그러면 가시는 데가 뻔할 텐테. 당장은 편하게 누워계시는 것이 좋을지 모르겠지만 길게 보면 어머니에게 해로운 일이었다. 그리고 어머니와 보내는 시간이 길면 갈등이 생겨 모녀 관계가 좋을 리도 없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 갑자기 내 목구멍에서 어머니의 동정심을 자극할 만한 말이 튀어나왔다. 


아이고, 내가 순천 고등학교 다닐 때 어머니가 자취방에 데려다놓으면 일주일이 멀다하고 쪼르르 집에 돌아오고 쪼르르 돌아오고 했을 때 우리 어머니 얼마나 속을 끓였을까! 그때 어머니 고생시킨 벌을 내가 지금 받고 있네요. 벌을 받고 있어!

 

했더니 갑자기 태도를 바꿔 당신 어디 가야하냐고 물으신다.


유치원이요! 


했더니 거길 가시겠단다. 해가 징하게 긴데 어떻게 집에 누워만 있냐고 양치질을 하시고 겉옷을 찾으신다. 유치원 친구분들하고 나눠 드시라고 사탕을 한 주먹 드렸더니 주머니에 집어넣으시면서 흡족해하신다. 어머니는 아이가 되어가고 있구나. 어린이집을 안 가겠다고 떼를 쓰는 아이처럼 어머니도 딱 그 모양으로 떼를 쓰시다가 달래고 부탁하니 집을 나서시는구나. 

작가의 이전글 책제목으로 시쓰기 2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