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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상파 Feb 04. 2024

간병일기 15

서러운 볕

볕이 쨍하지만 찬 기운이 물씬 풍긴다. 집안 공기가 싸늘하다. 볕이 서럽게 차갑다는 백석의 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 무얼 봐도 서럽지 않은 것이 없는 그런 날들의 연속이다. 사는 것에 대한 회의가 깊어지다가 몸이 아프니 아픈 몸에 온 신경이 쓰인다. 끝을 보고 싶다는 간절함도 밀려온다. 


어제부터 아랫배가 아파오기 시작하더니 밤에는 통증이 너무 심해 잠을 자지 못했다. 신경을 너무 쓰다보면 찾아오는 지병이다. 아픈 사람을 옆에 두고 보호자까지 빌빌거리니 집안꼴이 말이 아니다. 약이라도 먹고 일어서야하겠기에 근처에 사는 언니에게 다니던 내과 접수를 부탁했다. 환자들이 많은 병원이라 대기하기도 힘에 부쳐 시간을 줄여보려는 심사였다. 언니는 출근을 늦추며 동생을 위해 진료보는 것까지 기다렸다가 집에까지 차를 태워주었다. 아이들은 학교와 유치원을 갔고 남편은 아직 취침 중이라 약을 먹고 자는 남편 옆에 드러누웠다. 속이 진정되는 느낌이 있더니 어느덧 잠이 들었나 보다.


눈을 뜨니 12시가 다 돼 갔다. 허기가 져 먹을 것을 챙겨먹었더니 다시 통증이 시작됐다. 과민성 대장증후군이라는데 속에 음식이 들어가면 꼭 통증이 동반됐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독이라는 것을 잠시 잊었다. 바늘로 쑤시는 듯한 통증 때문에 다시 안방으로들어가 엎드렸다. 한 30분 정도 지나니 진정되는 기미가 보였다. 남편은 엎드려 있는 아내에게 왜 편하게 눕지 않고 엎드려 자냐고 핀잔을 주면서 화장실로 향했다. 사람이 아픈 것도 모르고 잠을 자더니 잘 잤다는 말을 덧붙였다. 아내를 놀리는 말이 아닐 터인데 그 말이 왜 그렇게 섭섭하게 들리는지 모르겠다.


남편은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마다 참 잘 잤다는 말로 하루를 시작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는 숙면에 들지 못하는 편에 속한다. 잠자리에 눕자마자 코고는 소리를 내기는 하는데 호흡이 고르지 않아 사람이 힘들어보인다. 고릉거리는 아들 녀석의 숨소리는 편하게 들리는데 남편의 숨소리는 물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듣고 있는 사람조차 덩달아 숨이 가빠온다고 할까. 잠결에  발작이 걱정돼 들여다보니 얼굴이 편해 보이지 않았다. 항암 약을 복용하고 있어서일까. 나흘째가 되니 몸이 약을 거부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먹는 것과 자는 것은 시원찮다. 몸이 약에 적응을 하고 있는 것은 정말 감사할 일이지만. 


오늘도 남편은 점심을 먹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인터넷이라도 검색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날마다 확인하는 메일의 비밀 번호를 기억하지 못하고 쩔쩔맸다. 처음 있는 일이다. 몇 번씩 시도 끝에 로그인에 겨우 성공하여서는 보내려했던 메일을 도중에 그만 둔다. 생각이 엉키고 판단이 서지 않은 모양이다. 어쩌면 자신이 해야할 일을 잊어버렸는지도. 남편은 한참을 그저 손 놓고 멍하게 앉아 있었다. 보고 있으니 안쓰럽다. 뒤로 다가가 남편 목을 그저 가만 앉아줬다. 서럽게 차가운 볕이 서해로 저물어가고 있었다.(2010년 11월 15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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