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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상파 Feb 05. 2024

간병일기 16

밤 열두 시

어젯밤 12시를 전후로 남편은 5일치 항암제를 전부 복용했다. 혹여 이상이 생길까봐 마음을 졸였는데 별탈 없이 지나갔다. 아들 녀석이 그 시간까지 자지 않고 엄마를 기다려서 할 수 없이 아이를 데리고 들어가 재웠다. 녀석을 재우다가 그만 깜박 잠이 들고 말았다. 시간이 얼마나 흐른 것일까. 잠결에 옆자리를 더듬어보니 남편은 없고 문 틈으로 거실 불빛이 새어들어 왔다. 남편은 여전히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모양이었다. 한기가 들어 솜이불을 몸에 둘둘 말고 거실 소파에 앉아 남편에게 제발 이제 그만 하고 잠 좀 자자고 사정을 했다. 


밤 열두시가 넘으면 기력이 달리고 피로가 쌓여서인지 남편의 상태는 아주 나빠진다. 뭔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얼굴이 불안해 보인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되뇌고 했던 행동을 잊고 반복적으로 한다. 특히 약에 대한 집착이 강해져 먹었던 약을 또 먹겠다고 우긴다. 밤이 깊어가면 몸이 축나기는 이 몸도 마찬가지라 그런 남편의 행동에 너그러울 수가 없다. 제어가 안 된 남편의 행동에 자연 언성이 높아지고 오로지 이 사람을 안방으로 데리고 들어가 눕혀야한다는 생각뿐이다.

 

글을 쓰던 사람이라 한밤중까지 일을 하던  것이 몸에 배어 밤 12시에 잠자리에 들라고 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그래도 뇌종양이 재발하여 치료를 하는 중이니 잠이라도 제 시간에 들었으면 하는 마음인데 그것이 고착돼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잠을 제대로 못 자는 것이 병을 키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깊다. 병이 깊어가면서 남편에게 없던 버릇이 하나 생겼는데 그것은 잠자리에 들기 전 꼭 머리를 감는 것이다. 머리를 감고 나면 잠이 달아날 것은 자명한 일이니 자연 잠드는 시간은 더 늦져질 수밖에 없다.  


어제는 밤도 깊은데다가 내 몸 상태도 좋지 않아 제발 그냥 들어가 자자고 했더니 머리를 감고 잘 테니 먼저 들어가 자라는 말을 남기고 화장실로 직행했다. 남편의 고집을 꺾기에는 이미 늦어 어쩔 수 없이 소파에서 남편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기다리다가 그 시간을 못 참고 까무룩 잠이 들었다. 아무데서나 잠깐 잠깐 눈은 잘 붙이는 요즘이다. 남편은 그 늦은 시간에 화장실로 들어가서는 정해진 순서에 따라 씻기 시작했으리라. 먼저 칫솔질을 하고 그 다음에는 세수, 그 다음에는 세수대야에 물을 받아 발을 닦는다. 그리고나서 맨 나중에 머리를 감는데 삼푸칠은 2번을 한다. 그 일련의 과정을 해놓고 한 것을 잊어버리니 때로 그 과정을 반복하기도 한다. 그러기에 가끔은 화장실 앞에서 보초를 서며 머리를 감았다는 것을 상기시켜야 한다. 어제는 잠결에도 화장실에서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는 소리가 들렸다. 남편이 드디어 잠자리에 들게 되었다는 뜻이다. 


두 시 넘어 잠자리에 들었던 남편이 아침 열시 반쯤 일어났다. 늦은 아점을 먹고 신문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더니 그것은 오후에도 계속된다. 같은 지면을 몇 시간째 계속 읽고 있는 것이다. 읽은 게 각인되지 않으니 새롭기만 하는 모양이다. 신문을 보던 남편이 꾸벅꾸벅 존다. 소파에 앉아있던 남편의 손에서 펼쳐진 신문이 거실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다. 그걸 보고 있자니 마음이 짠해온다. 엊저녁부터 음악을 틀어줘야겠다는 생각에 남편이 좋아하는 김민기 노래를 들려줬다.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기도 하여 졸고 있는 사람에게 김민기 노래를 들어보겠냐고 물었더니 김민기 노래를 들은 적이 없다고 잡아뗀다. 오디오에 내장된 김민기의 CD를 꺼내 보여주니 고개를 갸웃거린다. 우리는 김민기의 상록수나 늙은 군인의 노래, 아침이슬 등을 따라 불렀다. 고달프고 애달픈 것이 꼭 우리네 인생 같았다.(2010년 11월 16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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