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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상파 Feb 06. 2024

어머니 말씀 06

어머니의 아침

어머니가 많이 게을러지셨다. 6시부터 일어나 부산을 떠는 나를 모른 척하고 모로 누워 하 세월을 누워 계실 작정으로 꿈쩍도 안 하신다. 7시 반쯤에는 일어나야 준비하고 센터 차 시간에 맞출 수 있을 텐데 태평이시다. 괜히 나만 마음이 급해졌다. 


어머니, 일어나서 화장실에나 다녀오세요.


어머니를 어떻게든 자리에서 일어나시게 하려고 화장실 말을 꺼냈더니 깨우지 않으면 방안에서 싸려고 했는지 급하게 일어나 시원하게 소변을 보신다. 다시 이불속을 파고들기에 안 된다고, 이제 일어나셔야 한다고 했더니, 


이렇게 일찍 일어나서 또 어디를 보내려고 지랄 염병을 하냐?


고 몹시 성난 얼굴을 하시고 전혀 예상치 못한 말씀을 뱉어내신다. 내 말에 뼈가 있었던 것일까. 지랄 염병이라니, 센터에 보내려는 내 의도를 알아차린 것일까. 그래도 그렇지, 지랄 염병이라니, 구정물을 뒤집어쓴 기분이 돼 나도 어머니에게 좋은 말은 나오지 않았다.


어머니 다리에 힘이 있으실 때 걸으셔야지, 그러지 않고 누워만 계시면 다리가 굳어 일어나지도 못하게 돼요. 그럼 갈 데가 어디겠어요? 어머니가 가시기 싫다는 요양원뿐이에요. 요양원!


어머니는 그저 누워있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 것 뿐일 터인데 나는 악에 받쳐 감정적이 됐다. 어머니만 챙겨야하는 아침이 아니었다. 고등학교 다니는 아들 녀석이 있고 외출 약속이 있다는 딸이 있다. 

 

어머니 일어나셔서 준비해야 손자 학교 간다고 씻고 밥 먹을 거고, 손녀는 그 다음에 또 씻고 밥 먹고 다 차례가 있어요. 그리고 저도 조금 있으면 아이들이 와서 일 해야 하고요. 얼른 일어나세요.


아, 그래? 그것들 먼저 씻고 학교 보내고 밥 먹이고 그래라, 나는 아무데도 안 가고 방에 가만 누워  있으련다. 


아니, 어떻게 하루 종일 누워 계시려고 그래요? 낮에 누워만 계시면 그 기나긴 밤은 또 어떻게 하시려고요. 


아이고, 그러게 말이다. 이제는 시골에 내려가도 못 살 것 같은데 어쩌면 좋으냐. 


어머니가 이렇게 고집을 꺾고 신세타령을 하시는 모드가 되면 나는 마음이 약해진다. 어머니와 드디어 대화가 되나 싶다.


아이고, 어머니 그냥 여기서 저랑 살아요. 저도 짝이 없고 어머니도 짝이 없으니 서로 짝하고 살면 되잖아요?


니가 힘들까봐 그렇지. 내가 거처하면 니가 얼마나 고생스럽겠나. 


다 늙어 딸에게 신세를 지고 있는 것이 미안하다는 어머니에게 나는 말을 함부로 지껄인 것이 미안해진다. 어머니가 짠해서 어머니를 안아드리며 그렇지 않다고, 절대 그런 생각 가지시지 말라고 했다. 어머니의 말씀에 따라 내 감정은 갈팡질팡이다. 화가 났다가 미안해졌다가 다정해진다. 그랬더니 어머니는 딸이 하자는 대로 고분고분 잘 따르신다. 머리도 감고 뒷물도 하시고 옷도 갈아입으셨다. 그런 어머니에게 식사를 하시라고 권했더니 벼락같이 화를 내신다. 방금 전과는 완전 딴 사람이 되어버렸다.


씹 같은 것이 또 어디로 내쫓으려고 밥을 먹이냐 먹이기는. 막 일어나 무슨 밥맛이 있다고 밥을 먹으라고 염병을 하냐?


왜 이리 밥 얘기를 하면 사람이 달라진 것일까. 학교 가기 싫은 아이가 아침이면 복통과 두통을 호소하듯 어머니는 센터에 가기 싫어 식사를 하시라는 말에 저토록 노여워하시는 걸까. 알 수 없는 것이 어머니 속이었다. 어머니의 욕설이 귀에 꽂혀 나도 그만 만정이 떨어지고 말았다.


아이고, 참말로 아침을 차려달라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러실까? 맛있게 잡수시면 차려준 사람도 기분 좋고 얼마나 좋아요. 드시기 싫으면 그만 두세요.


드시지 말라는 말에 골이 난 것일까. 어머니는 정말로 아침을 한 술도 뜨지 않으셨다. 아침은 굶어도 센터는 가셔야했기에 집에서 내쫓는 딸년에게 이미 했던 욕설을 몇 번씩 입에 올리시고 유치원 차를 타셨다. 

어머니를 보내놓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 왜 이런 하루를 시작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머니 오시고부터 이런 아침이 자주 반복되고 있다. 어머니 병은 잊어버리고 모르는 것이니 이미 아침나절에 있었던 일들을 잊으셨을 것이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일어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어머니에게 아침 일은 일어나지 않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내 기분은 하루 종일 꿀꿀했다. 어머니 병이려니 했어야 했는데 옹졸하게 굴었구나 싶었다. 어머니와 잘 지내려면 아침과 같은 그런 사소한 일들로 감정을 소모하지 말아야할 것이다. 어머니와 생긴 감정을 가볍게 넘길 줄 아는 여유를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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