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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상파 Feb 23. 2024

오늘의 운세 25

행복이 가득 차오른다

행복이 가득 차오른다


행복이 가득 차오른다는 오늘 어머니의  수술이 있었다. 운세를 보고 새삼스럽게 행복이란 단어를 입에 올려본다. 행복이 무엇일까. 모르겠다. 까마득하게 멀게만 느껴진다. 요즘 계속 심란한 마음으로 무기력하게 지내고 있는데 어머니에게 일이 생기고 말았다. 서울에 사는 언니가 어머니를 모시러 왔던 것인데 어머니가 그만 넘어지게 된 불상사가 생긴 것이다. 센터에서 내려오시다가 오른쪽 발이 기우뚱거렸고 그 바람에 오른쪽 엉덩이가 바닥으로 먼저 떨어지면서 오른쪽 고관절이 부러진 것이다. 어머니는 주저앉고부터 엄청난 통증을 호소하셨다고 한다.

 

토요일 오후의 일이었고 토요일, 일요일은 병원이 휴무이니 수술이 불가능하여 어머니는 꼼짝없이 누워 진통제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것도 통증을 진정시키는 데에는 한계가 있어 어머니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더욱이 의협에서는 전공의 사직이라는 초강수의 의료 대재앙을 예고하고 있는 참이라 수술날짜가 기약 없이 미뤄지는 것 아닌가 하는 초조함이 있었는데 다행히 어머니가 입원한 병원은 의료대란과 거리가 멀었다. 월요일에 수술이 가능할 수 있다고 했다.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하자 어머니 간병이 문제가 되었다. 어머니에게 문제가 생기면 어머니를 간병하는 것이 내 몫인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지만 나는 심신이 극도로 피폐한 상태라 어머니를 돌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우선은 간병인을 쓰기로 했다. 생에 대한 의욕이 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어머니가 그런 험한 꼴로 누워계시는 것을 보고 있으니 꼭 세상의 종말을 맞는 듯 했다. 자식은 나이와 상관없이 어머니의 세계로부터 심리적 이유를 벗어나지 못한 모양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고통스럽고 쓸쓸하게 병실에 홀로 누워계실 어머니를 생각하니 갑자기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해일처럼 울음이 들고일어났다. 감정이 메말라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한 날들이었는데 눈물샘의 둑이 터진 것이다. 엄마가 목울대를 울렁거리며 울어대자 아들은 엄마를 끌어안더니 ‘우리 엄마 왜 이렇게 귀엽냐?’라고 놀리며 웃어댔다. 아들 품에서 어린아이처럼 한참을 흐느끼며 울었다. 엄마로서 체면같은 것을 차릴 여유가 없었다. 아들의 언행에 나도 그만 웃다가 울다가 하며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오늘 수술실에 들어가시기 전까지 어머니는 계속 고통을 호소하셨다. 그러면서 당신이 무슨 죄를 지어 이런 짓을 당하느냐고 물으셨다. 치매로 정신이 오락가락하시는데도 마치 죄에 상응하는 고통이라는 것 정도는 분별하고 계시는 듯 했다. 수술 전에 심장 초음파니, MRI니, 골밀도니, 폐기능이니 하며 여러 가지를 검사했는데 폐 기능 검사는 하지 못했다. 어머니가 말귀를 알아들으시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지능력이 떨어진다는 간호사의 말에 내가 어머니 곁에 붙어 서서 몇 번씩 알아듣게 말씀 드렸지만 끝내 말뜻을 이해하시지 못했다.

 

어머니는 부러진 뼈 상태가 좋지 않아 인공 관절은 못하고 뼈를 고정하는 수술을 하셨다. 그런데 수술이 끝나고 마취가 풀릴 때쯤 어머니를 침대로 옮기는 과정에서 낙상 사고가 났다고 의사가 전해왔다. 그것도 수술 부위가 먼저 바닥으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수술실 간이 엑스레이로 검사한 바로는 수술 부위가 멀쩡하다고 했다. 정밀 검사를 위해 CT촬영을 하고 결과를 알려주겠다는 말을 남겼다. 가족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남동생과 함께 의사 면담을 요청하여 수술 결과와 낙상 이후 문제가 될 만한 일이 발생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수술실에서 나온 어머니의 얼굴은 많이 편해보였다. 마취제가 덜 깨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라 했다. 이후에는 무통 주사가 들어갈 거라고 했다. 


어머니 수술이 잘 됐다고 하니 행복한 날이라고 해야겠다. 아침 8시부터 병원에 도착하여 어머니 수술이 끝나고 집에 도착하니 4시가 넘었다. 오늘은 나를 위해서도 어머니를 위해서도 좋은 일을 했다. 넋놓고 앉아있을 수만은 없으니 마음을 다잡아야겠다. 텅 빈 가슴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무기력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몸을 움직여 할 일을 찾아야겠다. 수술실에서 낙상 사고가 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까지 벌어졌지만 그래도 수술 부위가 멀쩡하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어머니가 빨리 쾌차하시길 바란다.(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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