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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상파 Feb 23. 2024

간병일기 17

취침시간

딸아이가 학교에 자전거를 타고 갔다. 요즘에는 자전거를 타는 맛에 등교거부를 덜 한다. 걷는 사람 옆을 쌩 지나쳐 달리는 기분이 좋다며 집에 와서 자랑을 늘어놓는다. 속력을 내서 앞질러가는 것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를. 아들 녀석을 유치원에 데려다 주고 나서 학교 앞에 주차해놓은 딸아이의 자전거를 끌고 해안 도로 산책로로 향했다. 남편이 아직 취침 중이라 시간 여유가 있었다. 


산책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벤치 옆에다 자전거를 세워두고 맨살이 드러난 어시장 포구를 내려다보았다. 갈매기가 물길에 서서 먹이를 기다린다. 아니, 갈매기는 썰물에 빠진 물줄기에 서서 시간을 낚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 뜻 없이 저를 바라보는 나처럼. 아니다. 시간이란 그저 무심한 과객에 지나지 않으니 낚시 줄을 던지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그저 저 또한 무심한 과객으로 한 폭의 풍경이고자 하는지도.

 

어젯밤에 잠을 설쳤다. 남편의 취침시간을 앞당겨 보려고 약속을 정했다. 열시면 가족 모두가 안방에 들어가 눕기로. 남편이 그 사실을 잊어버릴까 봐 ‘열시면 자는 거’라고 계속 주입을 시켰는데 막상 그 시간이 돼도 남편은 컴퓨터 앞에서 일어설 줄 몰랐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뭘 듣는지 흥에 겨워 정신이 없었다. 들어가 자자는 말에 ‘조금만 있다가’를 연신 반복 했다. 아들 녀석 재우러 안방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무얼 어떻게 해야 할까. 어쩜 이런 사소한 다툼을 벌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그러니 남편이 하는 대로 그저 두고 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하지만 잠을 잊고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남편이 불안하다. 나의 불안을 잠재우려고 남편이 잠들기를 바라고 있다. 너무 이기적인가. 발작이 올 수도 있는 문제니 내 시야에 두고 싶은 이 마음이. 잠든 사이라고 발작이 안 온다는 보장은 없지만 넘어질 위험은 없으니 말이다.


음식뿐만 아니라 숙면 또한 몸의 보약이니 남편이 잠을 푹 잘 자 주면 좋겠다. 하지만 남편의 잠시간은 턱없이 부족하고 수면의 질도 낮다. 한밤중에 잠자리에 들었다가 화장실을 몇 번씩 들락날락한다. 자는 동안 숨소리는 무언가에 턱 막히는 듯 고르지 못하다. 그런데도 그는 오전에 일어나서는 늘 ‘잘 잤다.’고 말한다.


시간이 얼마쯤 흘렀을까. 남편 자리는 비어있고 문틈 사이로 새어들어 온 거실 불빛. 바깥에서는 인기척이 없었다. 순간 일이 일어났구나하며 잽싸게 거실로 달려나갔다. 그런데 남편은 소파에서 고개를 90도로 떨어뜨리고 앉아 졸고 있었다. 1시 반이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 내 잘못이다. 이 사람이 씻고 안방으로 들어오는 것을  확인했어야 했는데 아이를 재우다가 깜박 잠이 들고 말았다. 그냥 안방으로 들어갈 사람이 아니라 양말을 벗겨 주면서 화장실로 들이밀었다. 소파에 앉아 일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남편이 하는 스트레칭을 따라 하고서 함께 안방으로 들어갔다. 남편은 취침이 시작됐지만 나는 이미 달아난 잠을 붙들 수가 없었다.(2010년 11월 18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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