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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상파 Feb 26. 2024

간병일기 19

컴퓨터 앞의 그

컴퓨터 앞의 그


집이 병원이다. 두 아이가 감기에 걸려 골골거린다. 코를 풀 줄 모르고 훌쩍이기만 하는 아들 녀석은 한밤중에 벌떡벌떡 일어나 코가 막혀 숨이 안 쉬어진다고 괴로워한다. 기관지염까지 와서 숨소리가 가릉가릉하는 것이 정말 힘들어 보인다. 코가 막혀 답답하니 그것을 뚫어보겠다고 훌쩍이고 비벼대니 콧구멍이 부어올라 아이의 상태는 갈수록 나빠진다.


몸이 찌뿌둥한 아이의 기분은 아침부터 엉망이다. 저를 아프게 한 장본인이 엄마이기나 한 것처럼 헬리콥터처럼 엄마 주변을 맴돌며 있는 짜증 없는 짜증을 부린다. 아이의 징징거리는 소리가 몹시 거슬린다. 잠을 못 자기는 나도 마찬가지여서 신경이 곤두 서 있는 것이다. 딸아이까지 나를 볶는다면 폭발할지 몰라 딸아이만은 푹 재우려고 일부러 늦게 깨워 1교시에 대가게 했다. 두 아이의 감기가 끝날 무렵이면 나와 남편이 감기를 앓을 것이다. 우리 집에 온 감기는 아이들로부터 시작하여 어른까지 돌아야 끝이 난다.


남편이 장시간 컴퓨터 앞에 앉아 죽치고 있다. 왜 그렇게 컴퓨터만 하냐고 물었더니 내가 자기 마음을 몰라줘서 그렇단다. 집안에 아이가 셋이라는 것을 잠시 잊었다. 두 아이만 신경을 써서 골이 난 모양이다. 컴퓨터를 마주하고 있는 남편의 뒷모습은 나와 대화를 안 하겠다는, 완강한 거부의 몸짓으로 보인다. 그게 쓸쓸하고 서롭다. 서러우면 외롭고 외로우면 사람 사이에 놓인 벽이 시멘트가 아니라 철근처럼 보인다. 남편이 환자인 것을 잊고 그로부터 위로받고 싶어 하는 나를 발견하고 씁쓸해졌다.


남편의 기억에 구멍이 생긴 것을 이해하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그것은 알고 있으면서도 행동하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다. 살면서 몰라서 행동하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과거의 남편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나를 본다. 함께 해 온 이십여 년의 세월이 물거품처럼 흩어지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지금의 순간만이 우리 생의 전부처럼 휑하니 남아 있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남편은 인터넷 쇼핑을 멈추고 이제 글을 쓸 거라고 한다. 그는 하루를 거의 컴퓨터 앞에서 보내고 있다. 이미 글을 쓸 수 없는 상황인 것을 본인만 모른다. <기획회의>에서 청탁한 원고를 그만 쓰는 게 어떠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글에 대해서는 누구의 간섭도 받고 싶지 않다는 듯 왜 그만 두냐고 따지듯 묻는다. 쉬운 주제여서 금방 쓸 수 있다고 한다. 그래도 항암치료가 끝날 때까지는 쉬는 것이 어떠냐고 했더니 아니란다, 금방 잘 쓸 수 있으니 걱정 말란다. 더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2010년 11월 24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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